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
바람도 서늘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늘,
나도 모르게 '나의 살던 고향은.....'을 흥얼거리다가
문득, 이원수 선생이 이노래를 지었을 당시에도 과연 그러했을까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또하나
조선의 배운 선비들이 예찬하는 자연과 14살 어린 소년 이원수가 예찬하는 자연은 엄청나게 다르다.
그 간극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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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예가 막상 떠오르지 않는데, 어디라 할 것 없이 대체로 흡사할 것이다.
윤선도의 부용정을 예로 치자.
지금은 형이상학적으로도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는가 보다.
그러나 윤선도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당시 윤선도가 막 심고 가꾸기 시작한 나무들은 다 작고 초라했을 것이다.
여름날 막걸리를 마실 때, 나무그늘은 해를 가리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윤선도는 '상상의 세계'를 즐겼을 뿐이다.
따라서 윤선도의 결과물을 보려면 그먼길까지 돈내고 가야곘지만,
윤선도의 마음의 길을 보려면 그냥 여기서 '생각'만 해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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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때,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본의 푸르른 숲과 한국의 헐벗은 산하를 비교하고 탄식과 감탄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는 나무를 때던 시절이라 어디라 할 것 없이 산이 헐벗어 조선말부터 골치덩어리로 변했다.
일제때는 사방사업이 아주 중요한 국책사업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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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의 의미가 지금하고는 많이 달랐을 거라는 것이다.
이 동시를 쓴 이원수선생이 겨우 14살 때 창원에서 지었다고 한다.
14살 천진난만한 어린 친구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실재였을까? 추억이었을까? 상상이었을까?
14살 감수성이풍부한 어린이가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고 애잔하게 말할 때 이를 어떻게 해석할까?
나는 30%의 실재와 70%의 상상이라고 본다.
왜 그렇지 않은가.
한국의 모든 중 노년들이 하나같이 과거를 그리워하듯이 말이다.
돌아가서 살라고 하면 못살 그 구질구질했던 세월을 말이다.
1929년 홍난파가 작곡을 했다.
한국은 이때도 산림(山林)살이(살림살이도 마찬가지이지만)이가 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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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들중에 타락사관을 가진 이들이 많다.
뭐든 "예전에는 아름다웠고, 지금은 타락했고, 오염되었고, 위아래도 몰라보고. 말세라말세라..."
글쎄다.
정말로 예전에는 아름다웠고 순수했고 정결했고 위아래도 단디했고 그러했는지...
그러나 분명하건데, 한국의 산이 특히 도심근처의 산들 (서울로 치자면, 북한산 도봉산)이 이렇게 울긋불긋
진초록 연초록 아름다웠던 시절은 100연녀래에 다시 없을 것이다.
지금의 산들은 기껏해서 산길만 훼손 될 뿐이다.
그러나 일본이 씨앗을 말리기 전에 이미 조선조 말에 한성부는 홍수때마다 헐벗은 산에서 토사 유출 등을 고민했다(라고 읽은 기억이 난다.-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그 시절에는 산길이 아니라 산전체가 훼손되었고,
그 고통은 도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6,70년대 한국의 등산객들은 송충이 때문에 골치를 썩였다.
지금 보시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금 태어난 애들은 '고향의 봄'이 실재일 것이다.
산에만 데리고 간다면 말이다.
그런데 불쌍한 것들..불쌍한 것들...
한 때 어린 것들은 도시안에만 있어야했다. 그래도 도시 안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다.
그러나 지금 그네들은 도시도 아닌 한뼘의 스마트폰에 머물고 있다.
봄여름도모르게 만든 이 죄를 누가 과연 용서빌 것인가....잡스 아재야.아재야..http://www.re-rock.com/3162
그러나 백년 전에는 고향의 봄은 아마 상상의 세계였을거라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때,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식을 몰랐다



북한산을 보면서, 세상에는 점점 세상이 혼탁해지고 말세로 간다는 타락사관도 있다지만,
나는 갈수록 좋아진다는 입장이다.
70년대 이후 산골의 봄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감수성이 없지 않던 초등학교 시절,
홍난파의 "고향의 봄"을 부르면서 눈물이 났다.
우리동네에서도 그의 노랫말처럼,
살구꽃이 담장 너머로 피어났던 집이 있었고.
산복숭아 꽃이 곳곳마다 있었고,
그리고 산에는 어디라 할 것 없이 진달래꽃 천지였다.
그러나 해방전후 전후에는 그러지 않았다.
동네 안에 복숭아 살구꽃 그리고 아기 진달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네밖의 산은 헐벗었다.

부처님은 자비로우시다.
그러하기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에 태어나셨다.
봄날 저녁, 신라의 청춘 남녀도 탑을 돌면서 사랑을 키웠단다.
봄날이 아니라 한겨울이라면 어떻게 가능했을런가.
내일 저녁 종로에서 연등행렬이 있다는 뉴스이다.
재작년인가, 아름다운 연등 광경을 지켜보는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던 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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