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링 Sling
모양과 사용법
슬링은 투석 끈이라고도 불리는 무기로서,
끈 가운데에 탄환을 싸는 가죽이나 천이 있고
그 끝에 끈이 붙어 있는데 마치 안대 같은
모양이다. 구조는 매우 간단해서 전체 길이는
1미터 가량이고 무게는 0.3킬로그램이 채 안된다.
슬링은 기다란 가죽이나 천에 돌을 놓고 한 손으로
받쳐든 뒤 다른 한 손으로는 끈의 양쪽 끝 중 한쪽을
둘째손가락에 건다. 그리고 이 손에 또 다른 한쪽을
쥔 뒤에 돌 받침 역할을 했던 손을 떼고 머리 위에서
휘둘러 돌이 가속하게 되면 손을 놓는다.
그러면 가속이 붙은 돌이 표적을 향해 날아간다.
이렇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지만
돌을 날리는 정도라면 비교적 간단하게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정확하게 상대를 맞히려면
상당한 숙달이 필요하다.
역사와 세부내용
슬링이 등장한 것은 거의 활과 비슷하며 중석기시대
(기원전 12,000 ~ 8,000년)라고 한다.
이렇게 돌을 가속시켜 투척하는 무기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사용되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도
존재를 볼 수 있으며, 그 이전의 역사 유물에서도 많은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슬링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속한 국가와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군대, 그리고 고대 그리스로 계승되었다.
슬링이 무기로서의 유용성을 갖는 것은 활이 관통력으로
적을 살상하는 것과는 달리 탄환의 충격에 의해 적을
쓰러뜨리는 무기이며, 방어도구가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활은 상대를 관통해야 하지만 슬링은 명중하기만
하면 그 부분에 부상을 입힐 수 있다. 예를 들면, 팔이나
다리에 명중시켜 그 부분의 뼈를 부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크세노폰은 그의 저서 [소아시아 원정기 : Anabasis]에서
로도스 섬의 투석병(돌팔매병)이 장궁을 갖춘 페르시아의
궁병보다 더 낫고 사격의 정확성에서도 우월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대 로마의 궁병은 언제나 다른
나라에서 고용한 보조군이었지만 투석병은 자국에서
편성된 정규부대였다. 투석병은 궁병에 비해 간격을
더 넓게 잡아야 하고 활보다 열등하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앞뒤 간격을 넓게 잡을 필요도 없이 밀집대형
으로 대항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제정 로마시대에 트라야누스 황제는 투석병을
밀집대형으로 운용했다. 그러나 슬링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데는 활보다 훨씬 조직적인 훈련이 필요했다.
기나긴 슬링의 역사는 크로스보우처럼 강화된 활의
등장으로 차츰 정규무기로서의 위치가 사라져 갔다.
그리고 어느새 전쟁터에서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그 모양이 바뀌었더라도 식민지
정복에 나섰던 군대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슬링으로
공격받는 것이며 이것은 21세기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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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장 잘 알려진 무기로서의 투석행위는
돌을 멀리 던지기 위한 돌팔매끈, “슬링”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륙에서
자생적, 독자적으로 이 “슬링”과 유사한 돌팔매끈은
발견되고 있고, 인류의 역사에서 돌팔매질이란 행위가
아주 근원적인 공격 혹은 위협행위의 원형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의 투석행위가 가지는 공격성과 방어의 어려움을
탁월하게 묘사한 오시이 마모루의 장편소설,
<블러드 - 더 라스트 벰파이어>의 한 대목을 발췌해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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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 레이는 충동적으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렸다. 순식간에 가드레일을 넘고 인도로 뛰어오른
그는 인도와 차선 사이의 콘크리트 블록을 집어 들어
아스팔트 위로 집어던졌다.
그는 순식간에 가드레일을 넘고 인도로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인도와 차선 사이의 콘크리트 뚜껑을
집어 들어 보도블록 위로 집어던졌다.
주위의 구경꾼들이 놀라 물러나고, 콘크리트 블록은
순식간에 여러 조각으로 박살났다.
레이는 그중에서 주먹 정도 크기의 조각을 점퍼
주머니에 쑤셔넣은 뒤, 커다란 조각을 들어 다시
박살냈다.
남자 몇 명이 대열에서 박차고 나와 인도로 뛰어들어
레이의 작업에 동참했다. 순식간에 투석용 콘크리트
덩어리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레이의 마음속엔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투석을 준비하는 단순 작업에 몰입하기
시작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짓누르고 있던
정체 모를 불안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어떤 경계를
넘어섰다는 해방감마저 느꼈다.
만약 이것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주저없이 던질 수 있을까?
부서진 콘크리트의 둔중한 감촉과 무게를
손바닥으로 느끼면서 레이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투석의 무서움은 들어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몇 번이나 보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투석은 학생이나 노동자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표면상으로는 금지되어 있으나 투석에 맞은 기동대
대원들도 날아온 돌을 주워 다시 되던진다.
주먹만 한 돌덩이가 아스팔트 노면 위를 구르고,
직격을 받은 자동차 앞 유리는 단숨에 박살나며
보닛은 종잇장처럼 일그러진다.
게다가 밤에는 어디서 날아오는지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공포를 가중시킨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갑자기 날아온 돌덩이가 살을 뭉개고 뼈를 부순다.
설사 강화 수지로 된 헬멧이나 듀랄루민 합금으로
된 방패로 무장한 기동대원이라 하더라도 머리 위로
쏟아지는 투석의 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실제로 과거에 몇 명이 사망한
적도 있다.
화염병 투척은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투석에
비하면 쉽게 대처할 수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투석이다.
이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이나
내전에 중화기로 무장한 병사에 대한 저항수단으로
투석이라는 고전적인 전술이 반드시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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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류의
조상이 동물의 뼈다귀를 하늘로 던지는 그 순간,
아마 돌멩이도 하늘 위로가 아니라 어딘가 목표를
향해서 날아갔을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이 공식적 적대행위, 적극적 폭력의
구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의미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 참고자료
<Daum 온라인 백과사전>
<전쟁의 역사>
책세상, 버나드 몽고메리 지음
<무기와 방어구-서양편>
들녘 판타지 라이브러리, 이치카와 사다하루 지음
<무기와 방어구-중국편>
시노다 고이치 지음, 들녘 판타지 라이브러리
<무기와 방어구-일본편>
들녘 판타지 라이브러리, 도다 도세이 지음
<무훈의 칼날>
들녘 판타지 라이브러리, 이치카와 사다하루 지음
<사건과 에피소드로 보는 도쿠가와 3대>
청어람미디어, 오와다 데쓰오 지음
http://redoctobor.egloos.com/4431213
투탄대는 돌 던지기의 발전 형태로 세계 각지의 고대
사회에서 유력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끈의 재료는 민족과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달랐는데,
가죽, 털실, 동물의 내장, 모피, 모발, 식물섬유 등이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투석기가 군사용으로서 고도의 전투부대를
구성한다는 식의 발전 형태는 보이지 않았으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그러한 양상을 보였다.
투석대의 위력을 알기 위해 참고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독일의 고고학자 M. 콜프만은 서양이나 중근동에서는
투석대가 청동기 시대부터 중세 말(17세기)까지
군대의 정규 무기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에서는 투석병의
지위가 활부대의 지위와 대등했다.
그리스의 경장부대는 투석대, 투창대, 활부대로
구성되었으며 투석병의 기술은 매우 뛰어나서
페르시아병 사정거리의 두배를 자랑했다고 한다.
그들은 목표지점의 사정거리를 장-중-단거리로 나누어
그에 맞는 길이의 투탄대를 용도에 맞춰 사용했다.
투탄 또한 토탄, 석탄, 연탄 등을 썼다.
비거리는 일반적인 화살의 비거리인 180 ~ 200미터를
훨씬 상회하는 350 ~ 450미터였다.
숙련된 투탄수는 200미터 전방에 있는 직경 1미터의
표적에 탄을 명중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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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중장보병
전술을 채택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술이나,
공성전에서 보조전력으로 의미를 부여한 중동의
아시리아 제국에서는 이러한 투석전문부대를
궁병에 못지 않게 중시했으며 주요 특기병으로
배치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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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글라트필레세르 3세는 돌팔매병을 이용한 최초의
아시리아 왕이었다. 센나케리브의 부조 가운데 하나는
돌팔매병이 두 명씩 조를 이루어 궁수 뒤에서 전투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고각 투석은 특히 도시의
가파른 사면위를 공격할 때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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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대 중동의 전술체계를 확립한 군사국가 아시리아
군대는 이러한 투석을 당시 효과적인 공성무기가 없이
파성추를 이용한 성문 돌파 등 수단을 주로 사용했던
당시 공성전에 매우 유효한 공격무기로 활용했습니다.
당시의 부조 등에서 아시리아 군의 활약을 다룬 부분을
보면 이 투석부대가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그 외에도 중동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정규군대에
포함되거나, 혹은 이와 맞서기 위한 돌팔매끈을 이용한
투석행위는 굳이 아시리아처럼 정규 편제로 넣지
않더라도 널리 성행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히브리 민족이 인근의 다른 종족과
다투는 전쟁을 보면 이러한 투석이 쌍방에서 매우
활발하게 벌어지는데 가장 유명한 일화는 역시나
“다윗과 골리앗”의 결투이지요.
소년 시절의 다윗은 당시의 풍습대로 집안의 가축을
치는 목동으로 시간을 많이 보냈을 것이고, 이러한
돌팔매질은 늑대 등 야생동물을 쫓기에 매우 효과적인
동시에 호신용구로도 좀도둑 정도와는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졌으니까요.
이러한 중동의 돌팔매질 전통(?)은 에게해를 사이에
둔 그리스로도 전파되었고 특히 로도스 섬이 잘
숙련된 돌팔매 특기병을 공급하는 지역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투석 특기병으로 알려진
곳은 소아시아 서남부의 로도스 섬 주민과 지금의
스페인에 해당하는 이베리아 반도 옆 대서양에
떠 있는 발레아레스 섬 주민들로, 전자는 그리스
시절에, 후자는 로마 시대에 군단 특기병으로
많은 활약을 했습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에도 이들 특기병은
종종 등장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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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99 ~375년에 25,000명의 그리스인이 용병으로
배를 탔다. 그들 대부분은 과거에 배웠던, 로도스인의
돌팔매나 크레타인의 궁술 같은 기술을 되살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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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폴리스 시절부터 알렉산더에 의해 열린
헬레니즘 왕조 시대까지 지중해 세계의 주요 특기병은
트라키아의 기병과 크레타의 궁수, 로도스의 투석병,
아그라니아의 투창병 등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발레아레스의 투석병이 로도스를 대체하고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기병 정도가 추가되었지요.
※ 올리버 스톤의 영화 <알렉산더>에서 가장 인상적인
전투장면인 가우가멜라 전투에서는 본격적으로
페르시아의 대군이 마케도니아 장창밀집대에 충격을
가하기 전에 경장보병들이 투석을 해 상당수의 기병과
전차병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고대 전투에서
투석병의 운용방법을 가장 잘 드러낸 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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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벨리테스 Velites 라고 불린 빈민층 병사는
아무런 방어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다만 돌팔매 끈과
돌멩이로 무장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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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도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평민들은 초창기엔
무장을 장만할 수 없어 벨리테스라는 정규 경장보병으로
활약했는데 돌멩이를 던지거나 조금 형편이 나은 경우는
투창을 사용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경장보병은 이후, 로마가 팽창하면서 정규
시민병 징집이 힘들어지고 장군들이 군벌화되면서 무장을
군벌이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사라지게 되고,
로마가 동맹국이나 식민지에서 모집한 보조병들 중 여러
특기병으로 교체하게 됩니다.
이후 유럽세계에서는 석궁이나 장궁 등 다양한 투척무기가
개발되고 활용되면서 투석부대는 사라졌지만, 게르만족의
경우에는 상당기간 돌을 던지는 전술이 돌격 초기에는
종종 사용되었다고 하며, 이슬람 군대의 경보병 중에는
돌팔매를 활용하는 인원이 적지 않았고, 오스만 투르크에
이르러서도 바시-바조우크스 같은 보병들은 돌팔매를
활용하곤 했습니다.
http://redoctobor.egloos.com/443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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