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길, 박쥐 이야기....
박쥐길은 여느길들에 비해 작명의 방법이 전혀 달라 끊임없는 이야기꺼리가 있습니다.
아래는 박쥐길의 '박쥐'가 무슨 뜻인지에 관한 가설입니다. 읽으시면, 박쥐길이 조금 남다르게 될지도....
요는, 어원학적으로 박쥐길은 복을 주는 길. 밝은 길이라는 건데,
아니나 다를까, 클라이머들에게 특히 막 바위를 하게되는 입문자들에게 그러한 길입니다.
[짐승이름] 박쥐 / 정호완(한겨레신문 09 07 16)
전통 장신구 가운데 박쥐노리개가 있다.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부녀자들이 차고 다니는 노리개를 이른다. 언제부터 노리개를 차기 시작했을까. 정확한 연대는 알기 어렵다. 신라 때 허리띠에 달던 요패나, 고려 때 허리띠에 금방울이나 향료를 넣은 비단주머니를 차던 풍습이 조선에 와서 노리개로 변한 것으로 짐작된다.
박쥐의 ‘박’은 복(福)과 소리가 비슷하다. 오복을 가져다주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박쥐 모양의 노리개나 박쥐 문양을 넣은 노리개를 많이 달았다고 풀이한다.
일반적으로 노리개는 고름에 거는 부분인 띳돈, 끈, 패물, 매듭, 술로 이루어진다. 노리개는 다는 패물의 갈래와 크기에 따라 평복용과 예복용으로 가름한다. 패물의 갈래는 모양, 술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궁중에서 사용하던 대삼작, 상류층에서 즐겨 차던 중삼작, 보통의 젊은 처자나 어린이들이 사용하던 소삼작이 있다.
박쥐의 생태를 돌아보면, 박쥐는 ‘밝쥐’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쥐는 밤을 낮 삼아 날아다닌다. 때로는 새처럼, 더러는 쥐처럼 살아간다. 그러니까 ‘밤눈이 밝다’에서 밤눈이 밝은 쥐, 다시 ‘밝쥐’로, 다시 ‘박쥐’로 굳어져 쓰이게 되었다. 이는 박혁거세가 불거내(弗炬內), 곧 ‘밝은 누리’의 ‘밝’에서 ‘박’으로 굳어져 쓰이는 경우와 같다. 박쥐가 초음파로 지형과 대상의 움직임을 알아서 밤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뒤의 일이다. 본디 소리는 보이지 않는 빛인 것을.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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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름 이야기
-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 국어학) / 한겨레신문
용
해동에 여섯 용이 나타나시니 모든 일에 하늘의 뜻 아님이 없도다.(용비어천가) 여기서 용은 조선 건국과 관련한 세종 임금의 선대들을 이른다. 용포, 용루, 용안, 용상…… 들이 모두 임금과 관련한 말들이다.
용의 옛말은 '미르'(훈몽자회)다. '미르'는 물(水)이니 '밀-물'로 이어지는 낱말 겨레라 할 수 있다. 용은 물과 불을 다스리는 상징이었다. 농경 시기에 물이란 신격일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한자음으로 용은 영(靈)과 상통하는 바 있다.
땅이름에도 '용 계열'이 숱하다. 용산(미르기메), 용천(미리내), 용소(미르기물)에다 용강, 용전, 용지, 용성, 용담, 용두…… 들이 곳곳에 있다.
단군신화의 풍백, 우사, 운사도 용의 의인화 과정 아닐까? 고주몽도 마찬가지. 해모수와 오룡거에서 용이 끄는 수레가 바로 용과의 관련을 드러낸다. 석탈해 임금도 용성국(龍城國) 사람이다. 백제 무왕이 연못의 용과 어머니 사이에서 났다.(서동요) 용건(龍建)의 아들 고려 태조 왕건, 용의 후손이란 창녕 조씨 시조 조계룡…… 두루 같은 범주들이다. 용은 주로 임금과 같은 권위의 화신으로 받들린다.
이서의 <마경초집(馬經抄集)>에 동계(東溪) 선생이 곡천(曲川) 선생에게 말의 계보를 물어본다. 용에서 토끼로, 토끼는 기린으로, 기린은 말로 계보를 이어간다. 말도 천마사상과 같이 하늘과 통하는 신령성을 부여함을 보면 두루 짐승을 인간의 조상으로 믿는 토템의 한 얼 안에 넣어야 할 것이다. 용 날아 빛나는 거기 온갖 사랑 강물처럼.
말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사람 욕심이란 끝 간 데를 모르니 삼가야 함을 이른다. 두어 해 전에 몽골 울란바토르에 갈 때 몽골 비행기에 말대가리가 그려져 있어 인상적이었는데, 들판에도 공연장에도 테릴지 국립공원에서도 예외 없이 말이다. 말은 동력의 원천이자 탱크였다.
말을 몽골 말에서 모린(morin)이라고 한다. 제주 고장 말로는 지금도 '모리'라 하는 이가 있음을 보면 몽골과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에서 '말'로 소리가 나는 말 세 가지가 있다. 사람이 타고 다니는 말(馬),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할 적의 말(斗), 입으로 생각과 느낌을 전하는 말(言)이 그렇다. 소리가 같고 뜻은 달라도 옮김과 전달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지난 일과 관련지어 보면, 신라 시조 혁거세와 날아오르는 흰 말, 고구려 주몽과 비루먹은 말, 동부여 부루와 금개구리(금와) 모양의 어린아이, 경주 황남동 고분의 천마도…… 들이 드러난 대표적인 말 관련 신화소들이다. 여기 천마는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늘과 땅의 만남으로 거룩한 말의 속내를 드러낸다.
달리 윷놀이에서 도, 개, 걸, 윷, 모라 할 때 걸(geol)이 지명 대응성 등으로 보아 말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거룩하다'의 '거룩'이 말을 뜻하는 '걸'에서 갈라져 나온 형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삼한 마한(馬韓)의 '마'도 말의 신성함과 으뜸감을 이른다. 따라서 말이 접두사가 되어서 '크다-거룩하다'로 쓰임을 알 수가 있다. 초인의 말울음 소리에 솜다리는 꽃피네.
범
범(호랑이) 모르는 길을 생쥐가 안다. 저마다 남모르는 능력과 정보가 있다는 얘기다. 단군신화에는 곰과 함께 범이 등장한다. 범과 곰은 두루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었는데, 곰은 됐으나 범은 못 됐다. 토템이란 관점에서 보면, 상징으로 곰을 내세우는 겨레가 범을 내세우는 겨레를 이겨낸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범은 만주어 비럼(birm)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참고로 몽골어로는 발스(bals)라 한다. 오늘날의 범은 [벋]에서 [벌]로, 다시 벌엄 - 버럼 - 버엄 - 범으로 바뀌어 굳어졌다.(서정범)
옛말에 호랑이는 달리 갈월(훈몽자회)이라고도 이른다. 갈월은 갈범에서 비롯된다. 일본말로 호랑이는 도라(dora)다. 그 원형은 돋>돌로 바뀌었으며, 같은 소리의 틀로 재구성할 수 있으니, 그 형태는 닫(dat)이었다. 향약구급방에서는 호랑이를 둘흡(地頭乙戶邑)이라 적고 있다. 기원적으로 보아 닫과 ㅼㅏ-다(C)로 그 대응성을 상정할 수 있다.
견훤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밭일을 하는 사이에 범이 내려와 견훤에게 젖을 먹여 길렀다고 한다. 높고 깊은 산골짜기에 세운 산신각에는 호랑이가 산신을 태운 그림들이 걸려 있다. 이는 범이 사는 산의 신을 숭배함에 그 뿌리를 둔다. <후한서> 동이전에, 범한테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고 하였다. 특히 흰 호랑이를 영험한 신으로 모시며, 서쪽을 상징한다. 12지신의 하나이기도 하다. 신과 자연과 생명을 경건히 여기는 문화 복원이 시급하다.
곰
곰도 한 가지 재주는 있다. 우리나라에 가장 확실한 자원이 있다면 곧 사람인데, 일상에서 아웅다웅 살지만 사람마다 소중함이 더할 나위 없다.
겨레의 뿌리를 떠올리면, 곰은 신성한 상징성을 지닌다. 곰 여인(웅녀)이 단군의 어머니고, 백두산을 달리 웅신산(熊神山)으로 일컬으며, 공주의 본이름이 웅진, 곧 곰나루임을 고려하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옛말에 곰은 '고마'였다.(신증유합) 곰이야말로 경건하게 삼가서 흠모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마 敬 고마 虔 고마 欽) 단군의 어머니가 곰신이었고, 이는 창조신화의 뿌리샘이니까. 오늘날 진해의 옛 이름이 웅신(熊神)이었음도 암시하는 바가 크다. 일본 말로 곰은 '구마'이고, 가장 큰 축제의 하나인 아이누의 구마마쓰리(熊祭)가 곰의 신성함을 더해 준다. 아이누말에서 신이 '가무이'인데, 우리말에서 신은 '검'(신자전)이었다. 조물주가 검(geom)이라고 최남선도 적고 있다.
우리말에서 검이 신임을 아는 이가 적다. 그렇게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으니 모르는 게 이상할 건 없지만, 자기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는 있겠다.
'고맙다'란 '고마에 같다'는 말이 합친 형태로 "당신의 은혜가 곰 어머니, 곧 조상신과 하느님과 같다"는 뜻이 된다. '고맙다'야말로 겨레의 화두이고 뿌리의식을 드러낸 말이다. 어머니란 말도 고마(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개연성이 높다. 고맙소 향 깊은 언덕 무지개는 피리니.
돼지
꿈에 돼지를 보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다. 전날 돼지를 '돋, 돝, 도'라고 했다. '도'는 도 - 개 - 걸 - 윷 - 모의 도다. 도는 ㅎ종성으로 쓰이는 낱말로 '도'가 '돋 - 돝'으로 굳어진다. '도'와 '돼지'와의 관련은? 강아지, 송아지의 접미사 '-아지'가 '도'에 붙어 도야지>돼지로 소리가 바뀌어 오늘에 쓰이게 되었다. 저(猪)의 고대음 '됴'가 바뀐 형태로 보기도 한다. 한편으로 돼지 돈(豚)이 우리말 '돈'과 소리가 같아서 돼지가 '재물'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구려 유리왕 때 하늘제사에 쓰려고 기른 돼지 교시(郊豕)가 달아났다. 제수를 맡은 설지(薛支)로 하여금 달아난 교시를 잡아서 그곳(국내성) 사람들에게 맡아 기르게 하였다. 설지는 임금에게 서울을 국내성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하자 임금이 답사한 뒤 서울을 옮겼다. 하늘에 바칠 돼지가 달아나 머물던 곳인 까닭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할아비 작제건(作帝建)은 서해 용왕을 돕고서 그 대가로 용왕의 딸과 돼지를 얻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왕건이 고려의 수도를 송악으로 정하게 된 데는 돼지와도 관련이 있겠다.
돼지는 열두 지지 가운데 마지막 짐승이다. 상해일(上亥日)이라 하여 매사를 삼가라는 가르침을 준다. 신라 소지왕이 겪은 사연에서 비롯된다.(삼국유사) 방위로는 북서북, 시간으로는 9~11시다. 먹거리로서보다는 상징으로 돼지가 우리와 가까운 짐승임을 깨닫는다.
짐승이름 이야기
-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 국어학) / 한겨레신문
고양이
"남산골 한 늙은이 고양이를 길렀더니/ 해 묵고 꾀들어 요망하기 여우로세/ …… 백성들은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하고/ 기름 말라 피 말라 피골마저 말랐다네."
다산 정약용의 우화시 <고양이>에 나오는 글이다. 여기서 늙은이는 일반 백성들이며, 쥐는 아전을, 고양이는 감사(수령)를 이른다. 백성들의 재물을 수탈하는 당시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혹은 고양이를 쥐 잡는 포졸에 비유한다. 고양이 묘(猫)를 뜯어보면, 해태 '치'에다 싹묘(苗)를 덧붙여 만든 글자임을 알 수 있다. 해태는 사람의 잘잘못을 알아차려 나쁜 사람을 만나면 받아 버린다. 싹 묘(苗)는 싹이라는 뜻 말고도 '작다 - 사냥하다'라는 말로도 쓰인다. 물론 '사냥하다'는 곧 악행을 저지른 이를 잡는다는 뜻으로 봐야겠다. 해서 암행어사를 해태에다 비유하여 '치사'라고도 이른다.
풀이에 따라서는, '고랑이 - 고앙이 - 고양이 - 괭이'로 그 바뀐 과정을 상정하였다.(서정범) 터키 말에서는 고양이를 케디(kedi), 몽골 말로는 고양이를 머루(mru)라 한다.
또 <계림유사>에서는 고양이를 '귀니'(鬼尼)라 했는데, 지금도 지역에 따라서는 '고내 - 고이', '살칭이'라고 이른다. 살칭의 '살'은 사이를 뜻한다. 호랑이도 작은 짐승도 아니면서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어떤 소임이 있으리라는 가정에서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뭔가 고양이가 신통함이 있다고 봤다는 얘기다.
사슴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비류국을 합병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흰 사슴을 잡아 큰 나무에 매달아 놓고 낮과 밤으로 울게 하면서 주문을 외웠다. 마침내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류국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다. 겁이 난 송양왕은 할 수 없이 백성들과 더불어 항복했다.
여기 주몽은 주문을 외워 비를 내리게 하는 사제였고, 사슴은 영적인 힘을 갖추고 있어 주술 효험을 보장했음을 보여준다. 달리 사슴은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제단에 바치는 제물, 곧 희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경북 고령의 암각화에 드러난 사슴의 뿔은 특별하게 사슴을 조상신으로 여기는 녹각숭배(鹿角崇拜)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슴은 머리 위로 뿔이 나무처럼 돋아나니 땅이 푸나무를 길러 이바지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아니한 것으로 봤던 듯하다. 사슴 녹(鹿)도 머리 위로 뿔이 나온 것과 그 머리와 다리를 본뜬 것이다.
옛말로 사슴은 '사 '(청산별곡)이었다. 어근 '삿-'에 접미사 '-'이 붙어 이루어진 것으로 풀 수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고라니, 놀갱이, 사섬, 사숨, 사시미라고도 이른다. '삿'이란 어떤 뜻이 있는가. '-슷'과 같은 낱말겨레에 속하는 것으로, '사이'란 말로 풀면 좋을 듯하다. 몸집이 큰 짐승인 소나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토끼와 같이 작은 짐승은 더욱 아니기에 그러하다. 일본 말로는 '시카'(sika)라 한다. 이는 '삿'과 같은 형태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개
개한테도 오륜이 있다. 주인에게 덤비지 않으니 그 첫째요, 큰 개한테 작은 개가 덤비지 않는다는 게 둘째다. 셋째는 아비의 털빛을 새끼가 닮는다. 넷째는 때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는다. 다섯째는 한 마리가 짖으면 마을 개들이 따라서 짖는다.
더러는 개를 일러 삼육(三育)의 짐승이라 한다. 지혜로움, 어짊과 덕, 용(勇)과 체(體)를 이른다. <계림유사>에서 개를 가희(家 )라 하였다. 오늘날도 충청 지역에선, '가이'라 이른다. 가이>개를 보면 우리말 변화와 궤를 함께한다. 만주어로는 구리(kuri)라 하고, 길랴크 말로 가늰(kanyn)이라 한다. 한자어로는 구(狗) 소리와 유연성이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가희라 함을 보면, 개가 흔하지 않은 짐승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자의 자원으로 보자면, 개는 신한테 바치는 제수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르자면 헌신(獻身)의 '헌'이 그러한 경우다. 흔히 이바지라고 한다. 뒤로 오면서 희생(犧牲)에서 제물이 소로 바뀌었지만.
보훈의 달인 유월을 살아가면서 겨레와 나라를 위하여 고귀한 목숨을 바쳐 순국한 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내 안의 내가 얼마나 속 좁고 왜소한 존재인가를 되돌아볼 때가 있다. 밤을 지새워 짖어대며 어렵고 힘든 주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개도 있음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코끼리
몹시 어려운 일을 비겨 "코끼리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라 이른다.
백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에도 코끼리가 들어 있다. 현명하며 신중하고 신성함, 힘의 상징으로 코끼리는 우리 문화 속에도 자리 잡고 있다.
흰 코끼리는 석가의 화신으로도 통하는데, 어머니 마야 부인 꿈에 어금니 여섯 달린 흰 코끼리가 부인에게 일렀다. "소자는 다생의 인연으로 부인께 잉태하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하면서 옆구리로 들어와 석가를 잉태하게 됐다는 이야기.
공자 제례를 '석전대제'라 한다. 이때 코끼리 모양 술항아리를 쓰는데, 이를 상준(象奠)이라 이른다. 힌두교에서는 코끼리가 거북을 밟고 우주를 등에 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는데, 거룩한 존재임을 상징한다.
코끼리를 옛말로는 '고키리'라 했다.(월인석보) '고'는 히읗 종성이 붙은 형태로서, 고ㅎ기리에서 고키리>코끼리로 바뀐다. 그러니까 이는 고(코)와 '길'에 '이'가 붙어 된 말이다. 말 그대로 '코가 긴 짐승'이다. 오늘날에도 고뿔 감기라 하거니와 여기 '고'는 고>코의 과정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갈치'가 쓰이지만 동시에 '칼치'가 함께 쓰임과 같은 경우다.
한자말이지만, 어느 분야에서 가장 선구적인 사람을 일러 비조(鼻祖)라 한다. 짐승이 어미의 태반에서 가장 먼저 그 모습과 기능이 활성화되는 조직이 코이기에 그렇게 쓴다. 그러니 코가 생명의 상징으로 떠오름 또한 이상할 것이 없다.
거북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놔라. 만일 내놓지 않으면 불에 구워 먹으리라." 가야 노래 <구지가>다. 노래에서 거북은 김수로의 탄생과 관련된 영적 존재다. 그 지명을 구지봉이라 함도 관련이 깊다. 주몽의 고구려 건국 과정이나 바리공주 이야기에서도 거북이 등장한다. 갑골점이라 하여 거북 뼈로 점을 친다. 갑(甲)은 거북을 뜻하는 글자다. 토템 신앙 중개자로서 거북을 신성시한 것이다. 이규보의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이나 별주부전의 거북은 모두 그 영험을 의인화해 드러내는 얘기다.
옛말로 거북은 '거붑'이었다. 끝 음절 '붑'에서 같은 비읍 소리 충돌 현상으로 거붑이 거북으로 바뀐 것이다. 한자말 귀복(龜卜)에서 거복 - 거북이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거북 토템은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에 있었다. 양산 지방의 모심기 민요 가운데 왕거미 노래에서 거미가 거북이었음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말 거미(거무) - 검에서 그 원형을 찾음이 더 온당하다. 여기 검(감)은 임금으로 이어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가미(神)가 되고 거북을 가메(game)라 함을 보면, 한자 기원이란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남선의 <신자전>에서 '검'을 신으로 풀이하고 있음 또한 한 방증이다. 동아리하자면, 거미(거무)의 검에 -음이 붙어 거뭄 - 거붑 - 거북이 된 것이다. <본초강목>에서는 거북의 수컷을 뱀으로 상정한다.
거북은 때로 남근 혹은 태양 숭배를 드러내기도 하는 상징성이 많은 짐승이다.
짐승이름 이야기
-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 국어학) / 한겨레신문
두루미
"천 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학이 난다./ 천 년을 보던 눈이/ 천 년을 파닥거리던 날개가/ 또 한 번 천애에 맞부딪노나."(학, 서정주)
고구려 옛무덤에는 신선들이 학을 타고 다니는 벽화가 있다. 천 년을 살면 흰빛이 푸른빛으로 바뀌어 청학이 되고, 다시 천 년을 살면 검은빛으로 바뀌어 현학(玄鶴)이라 한다. 지리산에 가면 청학동이 있다는데, 그 청학이 산다는 곳이다. 상투를 틀고 전통적인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교육의 터전으로 알려진 현재의 청학동과 세상을 버린 이들의 보금자리이자 예부터 전해오는 이상향으로서의 청학동이 같은 곳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두루미의 옛말은 '두로미'(사성통해)였다. 두로미가 두루미로 바뀌어 쓰인다. 일본말로는 '쓰루'(鶴)이니 '두루-쓰루'가 대응됨을 알겠다. 우리말 '두루'가 건너가 '쓰루'(turu)로 굳어진 형태일 수 있다. 뚜루루 운다고 또는 두루 멀리 다닌다고 두루미라는 풀이도 있다. 그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매우 날카롭고 위엄 있게 들릴 뿐더러 흰 날개가 두루마기를 걸친 선비 모습과 같아 보인다. 머리는 붉고 검은 벼슬을 한 듯 고고하다. 먼 하늘을 소리와 품새를 두루 갖추고 유유히 날아가니 이를 뭉뚱그린 데서 나온 이름으로 보인다. 오늘도 두루미들은 하늘 어디쯤서 가을을 비끼어 날고 있을 텐데.
까마귀
신라 아달라왕 4년, 연오랑과 세오녀는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는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임금이 된다.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간 세오녀는 연오가 벗어놓고 간 신발을 보고 그 바위에 오르니 그를 태운 바위는 일본으로 건너간다. 세오녀는 왕비가 된다.
이 무렵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세상이 깜깜해진다. 임금은 사람을 시켜 일본으로 건너가 두 사람을 오라고 한다. 그러나 연오는 하늘 뜻을 따라서 와 임금이 되었으니 돌아갈 수가 없다고 답한다. 그 대신에 해와 달의 정기를 모아 세오가 짠 비단을 내주며 돌아가 이 비단을 제물 삼아 제단을 모으고 제사를 올리라고 이른다. 그대로 하였더니 해와 달이 빛을 되찾았다. 오늘날에도 영일의 석동 일월지(日月池)는 제사를 올렸던 곳.
옛말로 까마귀는 '가마괴'(능엄경언해)였다. '가마괴-가마귀-까마귀'로 바뀌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가마괴의 '-괴'를 '고이-고리'로 보아 '고리'를 새로 풀기도 한다. 그러나 -접미사 '이'가 붙어 된 짐승이나 새 이름이 많음을 고려하면, '가막'에 '-위'(이)가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까마귀는 검다. 일본에서는 까마귀를 '가라스'라 이른다. 여기 '가라-구로'는 검은색을, '-스'는 새의 변이형으로 보는 풀이가 있다. 우리에게 까마귀는 별로지만 일본에서는 길조라 여긴다. 겉으론 웃으면서 속 검은 건 어인 일.
기러기
온조 43년(서기 25년께) 9월에 기러기 백여 마리가 왕궁으로 날아들었다. 점 치는 일관이 이르기를, "기러기는 백성을 뜻함이니 앞으로 먼 곳의 사람들이 전하께 귀의할 것입니다." 같은 해 10월이 되자 남옥저로부터 20여 집이 백제로 와서 살겠다고 청원을 하므로 받아들여 살게 하였다.(삼국사기)
기러기는 하늘의 심부름꾼이었다. 하느님의 불을 별들한테 전하는 제사장 구실도 하였다. 민속에서는, 혼례장에서 예식을 치르기 전에 신랑이 기러기를 신부 집으로 가져간다. 신부의 어른들에게 절을 하는 전안(奠雁)이라는 의례가 있다. 기러기는 또한 암수가 금슬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홀아비나 홀어미를 일러 '짝 잃은 기러기'라고도 한다. 조선 말엽 <규합총서>에는, 기러기를 신의·예절·절개를 상징한다고 적었다. 밤엔 무리 지어 잠을 자되 한 마리는 자지 않고 망을 보며, 낮이면 갈대를 머금어 주살을 피하는 슬기로움을 갖추고 있어 결혼 자리에 기러기를 쓴다고 했다.
기러기는 '긔려기'(훈몽자회)였다. 기럭기럭 하며 운다고 붙인 이름이다. '긔럭'에 사물이나 사실을 드러내는 접미사 '-이'가 붙어 굳어진 것. 풀이 따라 갈매기의 '-기'와 같이 '기'를 새를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일본어의 '가리'(雁), 몽골어의 '갈라군', 터키어의 '가즈'와 유연성이 깊어 보인다. 기러기 반가운 소식에 목 빠지는 이들이여.
오리
솟대에 올라앉은 새는 오리다. 오리는 물과 뭍을, 하늘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살아가기에 독특한 상징을 얻은 것인가. 한마디로 오리는 물새다. 물은 농사를 짓는 데 삶의 결정적인 열쇠였다. 시기에 알맞은 물이 있어야 풍년을 기약할 수도, 나라 힘을 기를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가 솟대에서처럼 오리는 다분히 물 신앙의 상징처럼 쓰였을 것이다.
오리는 다가올 재해를 미리 막는 영험한 구실을 하기도 한다. 풍수가들이 이르는 바, 배가 떠가는 행주형(行舟形)의 땅에서라면, 불안정한 배에 안정을 더하고자 배의 돛대에 값하는 솟대를 세우는 일이 가끔 있었다.
불이 나도 그러하다. 또 오리는 해독력이 아주 강하다. 시궁창에서도 썩은 먹이를 찾아 먹으면서 살아가기에 사람들은 오리 고기를 즐겨 먹는다. 불포화 지방이기도 해서 그런다지만.
옛글에 오리는 올히(두시언해)였다. 조선관역어에는 아계(我係)였다. 한마디로 위를 뜻하는 '올'에 접미사 '-이'가 녹아붙어 이루어진 말로 보인다. '오라버니, 올벼'의 '올'이 그러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 '올-옫-옷-웃-욷-우게'의 낱말겨레를 떠올릴 수 있기에 그러하다. 방언으로 위(上)를, 옷을 우게라고도 이르는 바, 이것이 바로 아가(올기)와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압록강을 얄루장이라 한다. 여기 얄루도 올과 무관하지 아니하다. 저 높은 하늘을 바라 솟대만큼 목이 길었느니.
올빼미
올빼미의 울음소리는 뭔가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조선 선조 무렵 문신으로 활동한 이수광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가 안변의 원으로 일을 할 때였다. 관아에 있는 나무숲에서 올빼미가 울었다. 사람들은 놀라 걱정을 하였다. "관아에서 올빼미가 울면 고을의 관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사람들을 타일렀다. "올빼미 울음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대들의 말이 이상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우연의 일치라도 되는 듯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원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특히 겨울밤에 올빼미가 울면 어린아이들이 칭얼대며 우는 소리처럼 우울하게 들린다. 이로 미루어 올빼미가 밤에 자주 울게 되면 마을이나 집안에 돌림병으로 숨지는 사람이 생기거나 난리가 일어나기도 하며, 애써 지어놓은 곡식이 여물지 않는 일이 생긴다는 속설이 나온 것 아닌가 한다.
옛말에 올빼미는 '옫바미'(훈몽자회 梟)였다. 말의 짜임으로 보아 '옫밤'에 접미사 '-이'가 붙고 소리가 이어나 굳어진 말이다. 미루어 보건대, '옫-돗-올'은 하나의 낱말 겨레들이다. 여기서 '옫'을 주목하게 된다. 옫은 위(上)다. 그러니까 밤새 소리로 듣고 아주 희미한 불빛이라도 이용하여 먹이를 잡고 활동을 하므로 그리 부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매사는 눈 바로 뜨고 마음의 소리를 들음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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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름 이야기
-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 국어학) / 한겨레신문
양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웨라/ 이 후론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여라.(장만)
세상살이가 그리 쉽지 않음을 드러내는 옛사람의 시조다. 새해를 맞아 처음으로 양의 날(上未日)이 되면 전남 일부 어촌에서는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지 않는다. 양의 걸음걸이나 울음소리가 조금은 방정맞은 데가 있어서다. 제주 쪽에서는 미불복약(未不服藥)이라 하여 아픈 사람이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는 풍속도 있다. 설령 약을 달여 먹는다고 하더라도 그 효험이 없다고 믿는다.
한편, 이날에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탈이 없다고 믿는 곳도 있다. 그것은 양의 외모와 성질이 온순하기에 그러하다. 여기엔 양이 갔던 길로만 되돌아오는 버릇도 한몫을 했겠다. 윷놀이에서 도·개·걸·윷·모 가운데 '걸'에 해당한다.
양은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서로 암컷을 두고 싸움질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은 평화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어쩌다 한번 싸움이 붙기 시작하면 뿔로 무섭게 공격한다. 이 때문에 양의 탈을 쓴 이리란 말이 생겨난 성싶다. 말하자면 각축(角逐)을 한다는 말이다.
갑골문으로 보면, 양(羊)은 형성글자로서 숫양을 앞에서 바라보고 그린 글자와 같다. 양은 소와 마찬가지로 신에게 제수로 바치던 때가 있었다. 죽지 않으려는 양(trago)을 잡아 신의 제단에 바쳐 비극의 말미암음이 되었던 것을.
두더지
칠성님은 지하국 매화 부인과 혼인해 살았으나 아이가 없었는데, 칠석날 하늘에 빈 끝에 태기가 있어 마침내 일곱 아이를 낳게 된다. 칠성님은 기쁜 한편, 탄식했다. 짐승들도 새끼가 일곱이면 많거늘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속이 상하여 먹는 것을 끊고 굶어 죽는다.
칠성님은 용녀 부인에게 다시 장가를 들었지만 아이들은 매우 사랑하였다. 이를 시기한 용녀 부인이 일부러 병이 든 것처럼 속이고 아이들에게 산 짐승의 간을 구해 오라고 하였다. 깊은 산으로 가는 칠형제 앞에 갑자기 금빛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나는 너희 생모의 화신이니 내 간 한 점을 갖다 주고 잘 살피라고 했다. 말 그대로 계모는 생간을 먹는 체하다가 피만 입술에 바르고 간은 요강에 버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날벼락이 치고 계모는 갑자기 눈먼 두더지가 되었다.
옛말로 두더지는 '두디쥐'였으나, 근대 들어 '두더쥐'가 된다. 두디쥐의 두디는 '두디다'로, 땅을 이르는 둗(다-닫-닿)에서 비롯하였고, 뒤지다의 뜻으로 쓰였다. 그러니까 땅을 파고 뒤져 가면서 먹을거리를 찾아다니는 쥐를 이름이다. 동사 두디다의 어간에 쥐가 붙어 이루어진 짜임새다. '두디-두지'에서 두디의 '두'가 소리의 거꾸로 닮음을 따라서 뒤지다로 변하여 오늘에 쓰이게 되었다.
너구리
짐승들이 겨울 준비를 다 끝냈는데, 너구리만 느긋하게 놀고 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날씨는 추워지고 얼어붙기 시작했다. 너구리는 오소리를 찾아가 같이 지내자고 사정했다. 오소리가 조건을 내걸었다. "같이 살고 싶으면, 굴에 있는 오물을 모두 깨끗이 치울 수 있겠느냐." 그 뒤로 너구리는 게으른 이의 상징처럼 여기게 되었다.(연변 전설) 천 년 묵은 너구리와 감찰 선생과의 사연이다. 너구리가 사람으로 둔갑한다. 둔갑한 너구리는 서울로 올라가 어떤 정승의 사위가 된다.(거창 전설)
너구리의 옛말은 '러울'(獺, 훈민정음 해례)이었다. 달리 소학언해에서는 '너구리'가 나온다. 러울과 너구리는 모음 사이에서 자음의 특이한 변화를 보여준다.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만주 말로 니오헤(niohe, 이리), 에벤키 말로 네게(neke, 담비)와 비교된다. '러울'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는 '너울'과 관계가 있는데, 너울은 바다의 큰 물결, 얼굴에 쓰는 물건을 뜻한다. 동시에 너구리는 '너굴'에 뒷가지 '-이'가 붙은 말로 보인다. 여기서 '너굴-너울-러울'의 걸림을 상정해볼 수 있다. 개과에 들어 여우보다는 작으나 살지고 낮에는 굴속에 느긋하게 있다가 밤에 돌아다니며 들쥐·뱀·개구리·과일 등을 먹으며 산다. 사람의 너울을 쓰고 그렇게 엉큼한 일을 저지를 수가 있느냐고 한다면 너구리를 떠올릴 법하겠다.
쥐
"불의 근원은 금정산에 들어가 한쪽이 차돌이고 한쪽이 무쇠인 돌로 툭툭 치면 불이 날 것입니다. 또 물의 근원은 소하산에 들어가서 샘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손진태의 <조선 신가유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불과 물의 근원을 몰라 생식을 하던 미륵이 생쥐를 붙잡아다 볼기를 치며 밝혀냈다는 사연이다. 그러니까 물과 불의 근원을 잘 알 정도로 쥐가 슬기롭다는 얘기다. 열두 짐승(십이지지) 가운데 맨 앞에 나오는 게 쥐(=子)다. 사람이 땅 위에 살기 이전에도 쥐는 있었다.
쥐를 '주이'에서 왔다고도 한다. '주이>쥐'가 된다. 주이의 기원형은 폐음절형인 '줃'에 접미사 '-이'가 붙은 말로 본 것이다.(서정범) '줃이-주디-주리-주이-쥐'와 같이 바뀌어 굳어진 형태라는 얘기다.
옛말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찰음과 파열음이 아울러 나는 파찰음소가 쓰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수이-주이-쥐'와 같은 형태를 생각할 수 있다. 다시 '수이'는 사이를 뜻하는 슷(間<훈몽자회)에 접미사 -이가 붙어 '슷이-스시-수시-수이'로 되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사람과 신 사이를 통하는 존재로, 아니면 짐승과 날짐승(새)의 중간 존재로 보려는 생각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새도 쥐도 아닌 게 박쥐다. 한편에선 수많은 쥐가 실험용으로 사라져 간다. 쥐를 보면 자연이 절로 두려워진다.
토끼
"흰 이슬 비꼈는데 밝은 달 돋아온다/ 봉황루 묘연하니 청광은 뉘를 줄꼬/ 옥토(玉兎)의 찧는 약을 호객(豪客)에게 먹이고자."
고산 윤선도의 시조에 나오는 토끼. 옥토끼는 달에 살면서 떡방아를 찧거나 불사약을 만든다고 믿고 있다. 이처럼 토끼는 장생불사의 상징 동물로 여겨졌다. 그 민첩함으로 심부름꾼으로 나서는 일이 더러 있다. 경북 문경에 토천(兎遷)이란 곳이 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길을 잃고 헤맬 때 토끼가 나타나 절벽 길을 안내하였다고 한다. 문경에 '왕건' 드라마 촬영장이 마련된 것도 우연은 아니겠다. "거부긔 터리와 톳기의 쁠와"(龜毛兎角, 두시언해)에서는 토끼를 '톳기'라 적었다. '톳'에 접미사 '-기'가 붙어 된 말로 볼 수 있다.
중국어에서는 토끼를 토자(兎子)라 한다. 여기 -자(子)는 작다는 뜻을 중심으로 하는 지소사로 보인다. -자(子)가 흔히 우리말로 토착하는 과정에서 '-지'로 바뀌어 쓰인다. 이르자면 가지(茄子), 종지(鍾子), 장지(障子)의 '-지'와 같다. 이 '-지'가 다시 소리 유창성을 꾀하려는 부정회귀를 통하여 '-기'로 바뀐 것으로 본다.
몽골 말로는 '톨아이'(tulai)인데, 말의 뿌리는 '톨-'이 된다. 받침소리에서 유연성을 보면 '톨-톧-톳'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한자어 어원으로 보는 견해보다는 알타이 말 계통으로 보아 몽골말과 궤를 함께하는 우리말일 개연성이 더 높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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