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The Search in Posts

풍경은 외부자에게 발견되는 것.


불과 30년전만 해도 노원구 지역은 너른 들판이었습니다.
'그시절 농사짓던 이들은 북한산 도봉산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를 염두에 두면서 읽어보면 재미있을 글입니다.
 

나는 문득 '풍경은 외부자에게 발견되는 것'이라는 가라타니 고진의 명제를 새삼 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험준한 산악지대였던 알프스가 공간의 균질화라는 근대적 배치속에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탄생하고,
혁명의 좌절로 내면에 침잠한 메이지 20년대 일본 문인들이 '홋카이도'를 발견해냈듯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홍도 10경중에 제1경인 이 바위가 문처럼 보이는지 아니면 코끼리처럼 보이는지에 관한 http://www.re-rock.com/trackback/2072 글을 쓴 다음에.

아니, 글을 끄적이고 나니 이것이 인연이 되어 '풍경외부자에게 발견되는 것'이라는 멋있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동시에 알프스에 관해 '공간의 균질화라는 근대적 배치속에서....'라는 인문사회학적인 접근을 살짝 맛보았습니다.

아...어떤 책을 차근차근 읽어야 알피니즘(등산)이 싹튼 전후사정, 서양근대공간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을까요?

ㅁㅁㅁㅁㅁㅁㅁㅁ

아래는 위 문장의 원글을 책에서 옮겨 옵니다.


나는 강원도에서도 오지인 정선군 신동읍 출신이다.
지도상의 명칭으로는 정선과 여월 사이에 있는 함백이 내가 태어나서 중학교 교육까지 마친 고향이다. 탄광촌이었는데  
.....(중략)....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정선과 영월은 전혀 다른 얼굴로 내앞에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즘인가부터 정선은 '아라리'의 본고장으로, 영월은 청정한 생태계의 상징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것이다.
....(중략)....

결국 얼마 전 나는 아우라지와 어라연을 동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처음(!) 다녀왔다.
이를테면, 나는 그 근처에서 그토록 오래 살았건만 도시인이 되어 도시인들과 함께 그곳을 찾았던 셈이다.
어라연과 아우라지는 물론 아름답고 청정하다. 맑고 투명한 물 부드러운 듯 가파른 능선을 가진 산들의 행렬.
'낙석주의'라는 경고가 수도 없이 배열되어 있는 꼬불꼬불한 길들.
그런데 사실 이것은 강원도 산간지방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간적 특성일 뿐이다.
"야 너무 좋아! 어쩜 이런 데가 있다니!"라는 말로 연신 감탄을 해대는 동료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풍경은 외부자에게 발견되는 것'이라는 가라타니 고진의 명제를 새삼 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험준한 산악지대였던 알프스가 공간의 균질화라는 근대적 배치속에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탄생하고,
혁명의 좌절로 내면에 침잠한 메이지 20년대 일본 문인들이 '홋카이도'를 발견해냈듯이.

말하자면, 아우라지와 어라연이라는 풍경 역시 모더니티의 표상체계 하에서 비로소 "발견된' 기호인 셈이다.
청정 지대, 아리랑의 고향이라는 근대에 반하는 이미지가 강화되면 될수록
그것들은 근대적 시각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역설의 장 속에 들어와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살았던 나는 전적으로 이도시적 시선에 나포되지 못한 탓에 내 동료들처럼 그곳을 하나의 풍경으로 대해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다른 곳이라면 나 역시 외부자의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 보았을 것이다.
아니, 내가 했던 그 무수한 여행들은 어떤 점ㅇ서 모두 외부자의 시선, 근대인의 시선으로 풍경을 발견하는 과정이었을 터이다
.
나는 내 시선의 전도과정을 보지 못한 채 그 풍경들이 원초적으로 그렇게 존재했던 것처럼 간주했을 따름이다.
나의 벗들이 아우라지와 어라연을 보고 그러했듯이.

어디 풍경뿐이랴?
우리의 신체 곳곳에 각인된 수많은 표상 체계들 역시 이런 식의 전도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리라
....
(중략)

출처: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 고미숙 <책세상>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기타 재미삼아 읽을꺼리 TV드라마 <스프라이즈>의 일해석

more..





 


About this entry


세상에 이런 배낭도,,,,,,


세상에 이런 배낭 하나쯤 있다니 참 기분 좋네요.
어느 눈밝은 이가 미국 이베이에서 발견한 배낭 이야기를 모셔 옵니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금속판을 가죽위에 덧댄 다음에 리벳으로 고정시킨 라벨링입니다.
Pat'd Nov. 10. 1882
캬~ 먼지 몰라도 일단 백년이 넘어 뿐지네요.

아래에 전후좌우 속사정 등등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앞쪽(?)입니다. 딸랑 통가죽을 여덟 팔(八)형식으로 펼쳐 놓았습니다. 잘 관리하면 가죽이 질기긴 질긴가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등짝부분. 리벳 세개와 바느질. 한뜸 한뜸 수공작품입니다.
가죽에 주름살이 있는 모습도 눈에 띠고요.
군대이야기는 하도 뻥이 많아서 믿기 어렵긴 한데, 오래전 전쟁 때 먹을게 없어 군화를 삶아 국물을 마셨다고들 하는데,
비상시에 이 가죽 스트랩도 가능할까요?~~ 아마도 소가죽이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등짝부분의 배낭 안쪽인 듯한. 리벳을 자그마치 아홉개나 박았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1880년대면, 청바지가 나왔을려나. 이 배낭의 천감도 엄청 질기게 보입니다.
아래부분에 솔기하나 터진데 없이 잘닳은 모습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뒤쪽입니다. 잠그는 곳이 세군데이네요.
지금 어택색중에는 하나만 있는것들도 있죠. 설산에서 시간을 다투면서 개량된 거겠죠.
또한 이 잠금방식을 염두에 두면, 과연 벨크로방식(찍찍이)가 의류뿐 아니라 발명계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발명품이라는 게 믿깁니다.
벨크로는 스위스 산악지역의 풀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서 발명했다고 하죠.

이제 이 배낭에서 특이한 부분을 볼까요.
맨 위쪽에 가로질러 있는 가죽끈. 과연 무슨 용도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슨 용도일지는 아래 작은 사진과 사용설명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헉. 머리에 두르고 있네요. 무게를 머리쪽으로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는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네팔사람들이 바구니(남로)를 지는 방식하고 똑 같네요.
지구촌 사람들 뭐 이런 프로를 보면 아프리카 흑인여성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짐을 옮기고.
저는 이게 전형적인 후진국형 수송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생각하니 말그대로 '생활의 발견'이네요.

어깨의 부담을 어떻게하든 분산할려는 노력의 성공적 결실 말이죠.
시골 어머니들의 행동거지를 쪽팔려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 설명서입니다.
이 배낭은 특허 Dec. 12. 1882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위보다 후속모델인 것 같습니다.
약간 개량 또는 눈에 띤 점 두어부분이 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1번 : 피켈꽂이로 추정됩니다.
2번 : 오잉. 가슴 스트랩입니다. 탁월한 개량입니다.
       아무래도 가죽 스트랩은 자꾸 벗겨질려는 성향이 있겠죠. (맬빵끈의 허리부분도 앞쪽으로 전진이동)
3번 : 머리 밴드 부착부분이 앞으로 이동했네요. 네팔사람들의 스트랩이 앞에 있는 것처럼 말이죠.
       같은 목적을 띠는 경우는 기술이 같은 방향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로 정보교류하지 않아도..


아래는 이 배낭의 설명입니다. 시간나면 대충 번역을 할까 하는데^^ ☞ more 클릭하시면 원문입니다.

more..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그렇다면, 이베이에서는 과연 얼마로 내어 놓았을까요?
놀라지 마시라. 클릭☞  : http://cgi.ebay.com/1882-dulut ··· 360ef




#출처 http://www.kgnews.co.kr/news/a ··· 40028
네팔에 대해 더 읽을꺼리 http://www.kgnews.co.kr/news/a ··· 40028

About this entry


힐러리... vs 힐러리 오노우!



힐러리 여사가 힐러리 경하고 이야기는 일전에 한번 쓴적이 있습니다.
힐러리 경. 힐러리 여사  http://www.re-rock.com/907


오늘은 그 이야기를 실제 책에서 옮겨와 봅니다.
힐러리여사와 힐러리 경하고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힐러리 여사 책에도 나와 있겠지만,
제가 본 책에서는 아래와 같은 구절로 나오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관심사항.

1. 엄마가 지었다.
2. 그당시 특이한 이름이었다.

3. 힐러리가 백악관 시절 이렇게 떠든건 충분히 심정이 이해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별로 할 이야기가 없었을 힐러리니까....

4. 우리는 힐러리 힐러리 하지만,
힐러리는 조용히 뉴질랜드에서 살았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덧붙여 재미있는 이야기 한토막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75년 클린턴과 힐러리가 신혼여행 갔을 때......
참 믿기지 않네요. 우리나라는 이렇게 여행 간 이가 과연 있을까요?
미국은 참 모를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끝낼 수 없는.



출처 : 힐러리의 삶

About this entry


북한산과 현대사...


지리산. 가야산. 설악산. 오대산 등등과 북한산의 차이는 과연 뭘까요?

북한산은 천팔백만명이 찾는 산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사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탈색된 무색무취의 산, 냄새도 색깔도 없는 산입니다.
텅빈 산입니다.
잊혀진 산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부재한 공간입니다.

그러다보니 배움이 없는 산입니다. 등산화로 반들반들거리기만 하지...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북한산에는 근대사도 사실 변변찮습니다만, 현대사 관련해서도 지금 당장생각하기엔 6.25 이후에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음, 다시 곰곰생각하니 김신조 일당의 루트가 있었네요. 그들의 루트도 현대사라고 하면.....)
기껏해서 여야 정치인들이 쑈삼아 북한산 오르는게 뉴스깜이 되긴 하지만, 이런 건 역사가 아니잖아요.
역사가 없다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북한산에게는 슬픈 이야기이도 하지만,
진짜 슬픈 이야기는 6.25에 있었습니다.
사람 이야기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래전 지하철을 타서 읽을꺼리를 찾아 선반을 두리번했더니, 담배갑만한 책자가 눈에 띄더군요.
낮은 목소리로 설득력 있는데다 자그마치 400만부나 팔렸다는 점에서 참 인상적인 책이었는데,
특히나 이 책에는 북한산 관련해서 한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의외의 사실이 있어 좋은 자료로 책꽂이 꽂았다가 그민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 곽선희 목사의 설교집인줄 알고 사랑의 교회에까지 이 책자를 찾기 위해 전화도 한적이 있을정도로 애좀 태웠습니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책꽂이에서 얇은 이 책이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더군요.
얼마나 반갑든지......


1956년 초판인 이 책에는 6.25와 관련하여 북한산이 아래와 같이 잠간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군에서 펴낸 6.25전사를 보면 이 부분이 우리측 시각에서 '승리의 전투로' 자세히 나오겠지요.

제가 읽은 한국군,유엔군 전사에 의하면 대충 이렇습니다.

연희전투(무악재전투)에 패한 후 인민군은 구파발쪽으로 도주합니다.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미군 지휘부는 그냥 도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일망타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행기로 토끼몰이를 하듯이 인민군을 북한산쪽으로 이끈다음. 퇴주로를 막고 폭격을 시작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 북한산은 헐벗은 산이었습니다. 미군의 비행기로 때려 붓는 폭탄과 기창소사아래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미군은 도시전체가 사라질정도로 평양대공습을 해댔습니다.
말그대로 후진국 민간인 학살이었다는 점에서, 아우슈비츠 학살하고도 비견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 보면, 패퇴하는 정규군인 인민군을 몰살하기 위한 북한산 공습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한경직 목사의 글은 바로 그부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마겟돈, 아비규환이었겠죠.

이부분에 관해서는  http://www.re-rock.com/528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오늘날, 한국에서는 북한산과 관련하여 이부분을 거론하지 않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북한산. 백운산장에는 이와 같은 위령탑이 있습니다.
해마다 현충일인가에 한국산악회와 대산연이 합동 위령제를 지냅니다만.

이 탑의 주인공은 그러나 산악인이 아닙니다.
검색해보면 아시겠지만, 후퇴하다가 길을 잘못들어 외따로 북한산으로 들어왔다가 자살한 신원불명의 국군 소위입니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

북한산계곡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한국산악계는 알고 있을까요?
알아도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을까요?

산악계에서는 정치를 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산악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옳은 선택이지요.
허나.
백운산장의 위령탑에 보여주는 아름다운 휴머니즘이
좌우를 넘어서  인민군들의 비극을 위령할 필요가 있고 지금이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산은 천만 서울시민이 지하철로도 찾는 도심한복판 산으로 세계에 이런 산이 없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산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슬픈 산이기도 합니다.



가치있는 일이라면, 산악계가 앞장설 위치에 있지 않을까요?
미력하나마 저도 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ㅁㅁㅁㅁㅁㅁㅁ

아래는 이때와 관련하여 어느 블로거가 쓴 내용입니다.

625 전쟁 때 9.26 서울탈환 이후 서울에 주둔하던 인민군 부대들은 대개 북한산 줄기를 타고 북으로 도주했지만 김일성의 후퇴명령을 완강히 거부하던
 인민군 6사단장 방호산(方虎山)-(중공팔로군계열) 휘하 연대급 패잔병 일단이 지금의 북한산 일원(진관사와 삼천사 골짜기)에서 은거암약하다가
9.28 서울수복후 제1성으로 지시한 이승만 대통령의 38선 진격명령에 의해 맹렬히 북진하던 국군 3사단 수도군단 등과 고양인근에서 격돌. 쫓기고 쫓기다 이곳 북한산 진관사와 삼천사 인근 골짜기에서 최후를 맞이 합니다.
 당시 삼천사 진관사 골짜기는 그야말로 선혈이 흐르던 계곡이었다는군요.
(참조- 이태 著 남부군 및 수도군단사)

수주간의 치열한 전투끝에 인민군 연대급 패잔병 전원몰살. 하지만 그 화려했던 진관사도 전화(戰火)에 싸그리 불타버리고 맙니다...




위령탑 사진 출처
http://cafe.daum.net/nature200 ··· 82641

다음 검색어:  미군 6.25  평양 폭격
 


About this entry


도봉구 노원구에서 북한산성입구 가는 법.


도봉구나 노원구쪽은 북한산 도봉산에 관한한 참 좋은 곳입니다.
눈들면 그곳이고(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덤덤해지기 쉽지만^^)
주말에 모임시간에도 쫓기지 않고...

그러나, 구파발 북한산성쪽 산행때는 만만치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종로3가역이나 충무로역에서 3호선 환승을 하게 되는데,
검색해보니 노원->구파발역까지 51분이고, 구파발역에서 또 버스기다리고.....이렇죠.

구파발쪽 산행시 : 구파발역이 아니라 지축역을 노려라☞....http://www.re-rock.com/1717


여기 또다른 길이 있군요.

☞....가능역 (1번 출구로 나와 의정부여고 쪽 승강장)에서 34번 시외버스타고 북한산성 정류소에서 내린다.

시내에서 가능역까지는 지하철도 좋지만 시내버스도 좋음.
34번 버스: 탑승시간 20분, 10~20분 간격으로 운행.




실제 소요시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북한산과 도봉산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일듯 싶습니다.
게다가 구파발역이나 지축역에서 또 버스를 기다릴 필요 없고요.

이른 봄날, 노적봉은 따뜻해서 좋습니다. 그때 한번 시도해 봄직합니다.




출처 및 보다 상세한 설명:

수유역에서 지하철 4호선으로 창동역에 도착, 1호선으로 갈아타고 의정부 가능역에서 하차,
불광동행 신성교통소속 34번 시외버스를 타고(가능역 1번 출구로 나와 의정부여고 쪽 승강장)
고양시 덕양구 밤골(효자2동) 정류소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탑승시간 20분, 10~20분 간격으로 운행)

서울 강북구 쪽에서 출발할 경우는 시간이 대폭 단축되는 노선입니다.
수유역에서 의정부 가는 시내버스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도로가 빙판길임을 감안, 지하철을 탔었는데, 그게 착각이었습니다.
의정부 가능역 갈려면 소요산행 또는 양주행 전동차를 타야 하는데, 그게 자주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노선은 시내버스를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 도봉 민주 산악회 http://cafe.daum.net/dobong-ga ··· 44456


About this entry



<< Previous : [1] : [2] : [3] : [4] : [5] : ... [6] : Next >>

Tag Cloud

Categories

전체 (1871)
알짜배기 (134)
알알잡설 (520)
알려다오 (70)

Calendar

«   2010/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