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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산악인의 묘지가 가능한가?


북한산 도봉산에 산재해 있던 산악인들의 비와 동판들을 모아서
북한산 무당골짜기에 조성된 '산악인의 묘지'에 모셨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과연 이곳은, 아니 한국에는 프랑스 샤모니처럼 산악인의 묘지가 가능할까요?

결론은 부(不)다.
한국에서도 관급공사로 각종 산악인 기념관은 세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산악인 묘지는 난망이다. 우리가 기리는 그런 산악인 묘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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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추모비나 산악인 묘지에 관해 중견 산악인의 입장이 잘 정리된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미지나 제목을 선택하시면 전용뷰어로 기사가 열립니다.]
Powered by 'http://www.mo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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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연찮게 부산일보를 읽다가 아래와 같은 문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광장이나 영국의 공원을 서울이나 부산에 옮겨놓는다든지
파리의 에펠탑을 도쿄에 재현하는 것은 정말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하나마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산악인들의 추모비나 묘지가 세워지면, 과연 샤모니나 체르마트처럼 일반인들의 관광지가 될까요?
저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한국 산악의 특징은 모임의 형태가 자일파트너쉽이 아니라 파티쉽 그러니까 선후배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선후배의 형식은 그 애틋함이 친구에 비해 옅을 수 밖에 없습니다.

두번째,
추모의 대상이 탁월한 등반을 이룬 이들이라기보다는, 한때 등반을 함께 했었던 자일 파트너들입니다.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뭔가 스펙, 그러니까 탁월한 등반결과에 추종이나 열광하는 법입니다.

국민들에게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미치기 이전에,
단위 산악회차원에서도 세월이 흐르면서 친구들조차 자주 찾기는 어렵다는 거죠.

세째로,
'14좌 여성 최초에 관한 이 호들갑을 볼작시면,
여전히 국민들에게 '산악인'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네째로,
근본적인 의문인 것이 한국에서 '묘지'문화가 유럽에서처럼 과연 살가운 아름다운 문화인지 의문이라는 거.
영화를 보면, 미국이나 유럽은 동네 가운데에 묘지가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데,
우리나라는 자기부모 산소만 빼놓고 나머지 모든 묘지를 마치 '뭐'보듯이 하지 않는가요?


그런고로, 결론은 부(不)다.


어느 시인이 불렀다더라.
' 사랑이 끝났다.
끝나서 다행이다.'

냉정한 덧붙임인지 모르겠지만, 무당골 묘지도 이 시의 느낌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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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의 기사는 아래와 같이 이어집니다.

정작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정돈된 건물이나 매력적인 가로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와 모습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진 동력을 살피는 것에서 얻을 수 있다.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의 방식에 따라 개발의 모습이 달라지고,
공간과 형태에 대한 인식에 따라 디자인 수법이 결정된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들의 배후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힘,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고 동시에 교훈이 될 것이다.


산악인 묘지는 번듯하게(?)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만,
그 내용을 담으려면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말의 다른 말인즉슨, '무당골 산악인 추모비가 끝났기에, 산악인 묘지는 상당기간 어려울거라는거.
천천히 생각하고 모색해야 한다는 거.


부산일보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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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추모비에 관해 기사들을 검색하시려면 ..http://enc.search.daum.net/ec? ··· %2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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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 등산 풍경 하나.


이런 것도 자료나 읽을꺼리가 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뭐 안될 것도 없을 것 같아 올려봅니다. ~~~

우리는 한국에서 등산의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을
보통 박정희씨의 경제기적,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1977년 에베레스트 초등 등을 놓고 풉니다.
그 이전에는 대체로 극소수의 전문 산악인들만 산을 찾았다고 하고요.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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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화요일)은 4. 19 혁명일입니다.  이날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온통 거대담론과 혼돈으로 기억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날짜 신문에는 봄을 즐기려는 시민, 등산을 가는 시민의 일상 풍경이 엿볼 수 있습니다.
1960년 봄, 보릿고개로 기아선상에서 허덕였다는 당시 지방인 경남 지역에 '등산'의 열기는 어느정도였을까요?
(*물론 당시 '등산'은 오늘처럼 광적으로 벌어지는 '등산 = 정상 도장 찍기'와는 다르다는 걸 유념해야 할듯.)


옷차림과 택시

<봄을 즐기려는 시민들은 十七일, 三三五五 떼를 지어 시외로 쏠려 갔는데
그 숫자가 너무나 엄청나서 「택시」만은 대호경기를 이루었다.
그래서 옷차림도 근사해야만 차를 탈 수 있었다는 것-
경남도의 어느 친구가 등산 준비를 하느라고 옷을 허술하게 입었더니
몇시간을 별러도 차를 못 얻어타서 결국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는 것-
돈밖에 모르는 세상의 한토막이라 할까. - 1960년 4월 19일>

요즘 유행하는 개그가 떠오르며 쓴웃음을 짓게 한다.
혼란한 시기에도 평범한 일상은 전개되었다.

 정광용 기자 kyjeong@




기사원문과 출처를 보시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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