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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국등산학교 풍경은...



1976년 제5회 한국등산학교의 학생모집 안내 팜플렛입니다.

그때 그시절 풍경을 엿보는 맛도 있고요.
그때하고 지금하고 비교해보는 맛도 있고요.
여러 주변 이야기도 언뜻 챙길 수 있습니다.

그시절 우이동은 어떠했을까요? 술집은. 장비점은. 웃는 모습들은...
수많은 사진들이 있을텐데 인터넷에 올리지 않으니까 아래와 같은 자료로 답답함을 삭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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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시절.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하에서 등산학교를 열정적으로 이끈 이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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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모집이군요.
1회인가 2회까지는 남자만 입소가능했었죠.

5천원이면 오늘날로 따지면 얼마쯤일까요?
지원자격은 산악동호인들이군요. 저때는 50세가 마지노선.

원서교부처.
산장. 삼각동의 설산장. 효제동의 샤모니. 에베레스트...저에게는 금시초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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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목들의 면면들.
순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알피니즘의 역사가 6번이군요.

오늘날 한등의 교과목 면면과 순서는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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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니즘의 역사는 아마 입소날 저녁 특강에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등산을 바라보는 게 요즘 말하는 커플링(decoupling)일까요?
병아리같은 초심자들에게 첫강의가 알피니즘의 역사를 강론하는 것은 혹시 디커플링 아닐까요?
외국의 단기 강좌들도 이럴까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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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스포츠를 생각한다.


스포츠 혹은 등산에 대해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혹시라도 관심있는 이가 있을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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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말해 등산은 19세기 영국에서 불처럼 생겨났던 수많은 스포츠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등산장비회사 이름이 *** sports라는 게 바로 이 사실을 방증합니다.

오늘날, 등산이 스포츠냐 아니냐라는 하나의 논쟁'이 있습니다.
이때의 스포츠(다시말해 20세기 후반의 스포츠)개념하고는 좀 다르죠.

흔히 알피니즘이라고 하는 등산의 본질을 고민하고자 하면,
반드시 19세기, 그러니까 등산이 태어나던 시절의 스포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운운하는 알피니즘이니 등로주의니 하는 것이
'19세기적' 또는 '근본주의적' 색채를 띠기도 하겠지만, 좋던 싫던 최근의 변화를 모두 내포하고 있을 수도...

탈레반'처럼 근본주의적이라고 함은 그리 좋은 수식어가 아닐수도 있죠
특히 타인의 행위를 바라보거나 평가할 때는.

ㅁㅁㅁㅁㅁㅁㅁㅁ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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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학자가 쓴 "스포츠를 생각한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참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등산. 알피니즘에 관한한 일본인들이 기울인 심혈에 대해서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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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자본.- 에 이어지는 일본어늠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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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포츠에 대해, 등산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 뉴스를 그토록 읽어도 가질 수 없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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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것은 절판이 되었다는 사실인데..북아일랜드라는 헌책방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구할 수 있을 듯.



ㅁㅁㅁㅁㅁㅁㅁㅁㅁ

이야기가 곁가지로 새는 것인지 모르지만,
토요일 중앙일보에 비틀즈 특집중에 황인용씨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 중에 한부분. 일본인들의 매니아정신을 엿볼 수 있는 기사 한토막.

카메라타에 들어서면 초대형 스피커 5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3층 높이의 천장까지 닿을 듯하다. 지금은 없어진 미국의 웨스턴일렉트릭과 독일의 클랑필름 제품들이다. 모두 1930년대에 만들어졌다. 미국산은 극장에서 쓰던 것이고, 독일산은 히틀러가 썼던 것과 같은 제품이다. 10여 년에 걸쳐 하나씩 사 모았다.

● 돈이 꽤 들었겠어요.

“ 지금 장만하려면 몇 억원은 있어야 해요. 20년 전 700만원 주고 산 우퍼가 지금은 5000만~6000만원 가요. 중국 부자들이 오디오에 눈을 뜨면서 빈티지 오디오 수요가 늘어 그래요.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문화에 대한 욕구는 자연스럽게 생기나 봐요. 하긴 일본인들이 아니었으면 빈티지 오디오가 이렇게 남아 있지도 않을 거예요. 60~70년대 오디오가 고철로 팔려나갈 때 그 가치를 알아내서 컬렉션을 시작한 사람들이 일본인들이에요.”


'카메라타'- 경기도 파주의 문화.예술인 마을 헤이리란 곳에 황인용씨가 연 음악감상실
http://kaudio.co.kr/gnu_base/b ··· D1343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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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산 Unser Berg


아시다시피 낭가파르바트는 독일하고 운명적으로 연결된 산입니다.
30년대 낭가파르바트 등정을 몇차례 추진하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죠.
그래서 그당시 그들은 '벌거벗은 산'  낭가파르바트를 '우리의 산 Unser Berg"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국가적 과업으로 바라보게 된거죠.



일본에게 있어서 "우리의 산"은 아무래도 마나슬루일 것입니다.
마나슬루 초등국이기도 하지만, 역시 슬픔이 배어 있는 산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게 있어서 외국의 산 중에 "우리의 산"은 과연 어디일까요?
아득한 슬픔이 깊이 배어있는 마나슬루라고 보아도 무리는 없지만...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걸 보면 아무래도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될 일입니다.

제 잠정적인 결론은 딸랑 이 산 하나도 아니고, 딸랑 저 봉우리 하나도 아니고,
자그마치 14좌 모두라고 해야 할 듯 싶습니다.

세계 14좌 완등한 이가 20명쯤 되는데 그중에 자그마치 4명이 한국인입니다.
게다가 안타까운 일이 없었다면 고미영씨도 완등했을 것이고,
김재수씨도 곧 끝낼 것 같고,
김창호씨도 곧 할 것 같고,

오호라...
자그마치 7명이라....무시무시하네요.

따라서 14좌가 곧 '우리의 산'이라고 하는 제 말이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ㅁㅁㅁㅁㅁㅁㅁㅁ

그런데,
뭐랄까 그리 기쁘지도 않고 뜰떠름하고 미지근한 까닭은
등정주의 뭐 등로주의 뭐 그런 거라기보다는...

14좌가 우리에게 아무런 감동이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어느 산 떠올려 반추할만한 꺼리가 없고.
하다못해 한국이 좋아하는 객관식 문제. 세번째 높은 산이 무언지조차 아는이 얼마일까요?

하나하나 산을 거론할 때마다 뭐 떠올릴 건덕지가 없다는 거.
그렇다면 14좌가 무슨 대수입니까?
슬픈 이야기입니다.



사실, 낭가파르바트는 독일인들에게 '우리의 산'이라기보다는 셀파들에게 '우리의 산'입니다.
독일 산악인들, 알고보면 세르파들에게 면목없죠.
독서의 계절입니다. 강추합니다...~~~
http://www.re-rock.com/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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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술 방법 추가...

심폐소생술에 관해서 새로운 자료를 아래에 모셔옵니다.



클릭하시면 상당히 클라이머러스(climb+Humorous)한 즐거움을 느낄수 있습니다...



실제 방법은 위와 같습니다. ...

이제 아래에 새로운 정보를 모셔옵니다. ...







관련한 이야기는

http://www.re-rock.com/2299
http://www.re-rock.com/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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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머. 어디에 있는가? 그 한량들은.


호들갑스러운 언론 탓에 참 좋은 날인 듯 싶은 추석도
알고 보면 양파같습니다.
막상 까고 보면 '속'이라고 별게 없는.....

추석을 잘들 보내셨겠지요....~~~
클라이머들은 그 속성상 한량들하고 그리 멀지 않은 종족들입니다.
근사한 한량 마인드를 내내 잊지 않기를.....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어디에 있는가,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초원,숲속의 빈터,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밀란 쿤데라. 『느림』중에서.



글을 곱씹어 읽고 또 읽어보니.
역시, 고도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추석, 끝나니 좋다.
돌아와 굳이 읽지 않아도 조용히 책을 펴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해지네요.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같은 부분, 조금 더 긴 글을 인용합니다.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졌는가?

...나는 자동차를 몰고 있고, 백미러를 통해 내 뒤의 자동차를 관찰한다. 왼쪽의 작은 등이 깜박거리고 있으며 자동차 전체가 조바심의 전파를 보내고 있다. 저 운전수는 나를 추월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맹금이 참새를 노리듯이 그 순간을 노리고 있다.
아내, 베라가 내게 말한다. "50마다 한 사람씩 프랑스의 도로 위에서 죽어요. 저 사람들 보세요, 주위에서 차를 굴리고 있는 저 미친 사람들. 저들은 거리에서 어떤 할머니가 털리는 것을 보면 지극히 몸을 사리는 바로 그들이에요. 한데 어째서 운전석에 앉으면 두려움을 모르게 되는 걸까요?"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렇게.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 나와 있다. 그는 시간의 바깥에 있다. …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이다. 오토바이의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시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물집들,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 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소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 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 이 한가로움은 빈둥거림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빈둥거리는 자는, 낙심한 자요, 따분해하며, 자기에게 결여된 움직임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사람이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밀란 쿤데라의 느림과 관련하여 읽으봄직한 글들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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