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성채(城砦), 학동마을
<들찔레의 편지 249> 멀리 동네 입구엔 새 담 쌓기가 한창
전통과 현대의 간극 메우고 무너진 역사의 성을 다시 쌓는 일
배강열 칼럼니스트 (2008.11.30 10:32:54)
늦은 가을 날, 볕이 성글다. 스무 살 넘긴 시절 가시내들과 어울려 쌍발이라 부르던 상족암(床足岩), 공룡 지나던 길을 걷던 기억이 난다. 파도가 몰고 온 바닷물에 잠겼다 드러나던 초식공룡의 발자국은 뭉텅한 타원형의 파임으로, 육식공룡의 발자국은 좁고 긴
발가락이 바윗돌에 새겨져있었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초등학생들처럼 쪼그리고 앉아 깔깔거리던 젊은 날, 곁에 앉았던 여자아이의 목덜미에서 어지러운 여자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새록하다. 그 후로도 몇 번 그 길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냥 바닷가이던 곳에 들어선 공룡 같은
기념물과
박물관에 이질감을 느껴 그냥 지나치고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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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동마을 돌담 I ⓒ 들찔레 |
이미 하루해는 길지 않은 늦가을과 초겨울 입구에 선 계절이지만 그나마 조금 더 남쪽 바닷가로 가면 내 건조한 영혼이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의탁하여 길을 잡았다. 돌담이 좋은 바닷가 마을을 찾아가는 것이다. 담이란 나와 타인을 가르기도 하고 또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상징이다. 또한 담장에 놓인 돌의 두께나 높이만큼 세월이 켜켜이 묵은 동네에는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 거리가 많다. 그래서 오래된 돌담이 남아있는 동네를 찾는 일은 즐거운 소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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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동마을 돌담 II ⓒ 들찔레 |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는 학마을이라서 학동이던가? 고성의 학동마을은 서기 1670년경 전주최씨 선조의 꿈속에 학(鶴)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자, 날이 밝아 그 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명당이라 믿고 입촌,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로 전해진다.
내 사는 인근 경주 산내면 학동마을엔 다랑이 논이 좋고 거창 학동마을에는 지금도 많은 학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그 외에도 학동이라 이름 붙여진 마을은 전국에 참 많다. 아마도 학마을 즉, 학동이란 마을이름이 많은 이유는 학이라는 새가 주는 상징성인 고결함, 귀함 같은
이미지를 마을의 대표적인 것으로 드러내고 싶어 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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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동마을 돌담 III ⓒ 들찔레 |
당항포를 지나고 산길과 바다 언저리를 돌아 학동에 도착한 때는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바람이 자고 낮 기온이 제법 따스한 날, 마을 어귀에는 묵은 담을 헐어내고 새 담을 쌓는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 뒤 수태산과 앞의 좌이산, 마을 앞을 흐르는 학림천에 높은 볕이 걸렸다. 넉넉한 들을 앞에 두고 길고 아담하게 만들어진 마을은 편안하여 느린 발걸음 슬슬 움직이기 좋았다.
‘밀란 쿤데라’는 ‘느림‘에서 말했다. 무한 속도 위에서의 단말마적인 엑스터시를 느낄 때 개인은 필시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리게 되며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있는 상태가 되고 시간의 바깥에 서 있는 것이라고. 다시 말해 자신의 본질을 잃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사치스런 느림의 발걸음을 떼며 옛 동네의 돌담길을 걷는 나 자신도 따지고 보면 의식하였건 아니건 현대인으로 살면서 느끼게 되는 불안함, 강박적인
호흡곤란을 해소하고 싶은 무의식적인 욕구에서 비롯한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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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동마을 돌담 IV ⓒ 들찔레 |
마을 담길을 얼마간 돌다 다시 담쌓는 구경을 한다. 일꾼들이 크고 묵직한 점판암을 쇠망치로 두드리자 돌은 더 얇은 판으로 쪼개지고, 돌의 모서리를 때리니 결을 따라 일직선으로 잘린다. 이곳 학동마을의 돌담길을 굳이 찾은 이유는 우리가 흔히 보는 돌담에 사용된 그냥 강돌이나 산돌이 아닌 변성암 계통의 점판암을 사용하여 바른층 쌓기를 함으로서 그 모양새가 예술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적당한 크기로 자른 돌을 이미 쌓아둔 담 위에 지붕돌로 올린다. 담장의 맨 위를 마감하는 돌은 담장보다 더 넓고 큰 돌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특이한 모양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이 마을의 돌담을 쌓는데 사용되는 점판암은 모두 마을 뒤 수태산 기슭에서 나온다. 지방 고유의 산천이 주는 소재가 지금에 와서 사람들의 영혼에 안식을 주는 문화재(등록문화재 258호)가 된 것이다.
제법 높게 쌓여진 좌, 우의 담장을 따라 골목길을 걸으면 내 그림자가 앞서가고 발자국 소리가 뒤따라온다. 이는 오래된 고성의 입구를 통과하여 역사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다. 이런 역사는 비록 기록되지 않은 채 옛 이야기나 전설들로 메워진 것들이라 할지라도 담장에 켜켜이 쌓인 돌의 층수 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옛날과 지금 사이의 시간 간극을 메워가며 옛 이야기를 상상하는 일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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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동마을 돌담 V ⓒ 들찔레 |
햇볕에 온기를 머금은 돌들이 만들어 낸 담장의 요철이 주는 질감은 아름답다. 손으로 쓰다듬는 담장엔 아직 마르지 않은
담쟁이넝쿨이 빨갛게 타고 가는 눈으로 바라보면 연속되는 돌의 무늬는 아주 바르지 않으면서도 질서있게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손으로 담장을 쓸며 걷는데 흙냄새와 더불어 짙은 가을 냄새가 코끝을 지난다. 어딘가 가장 가을다운 꽃, 감국이 익어 흐드러진 향기를 품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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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비정을 둘러싼 돌담 ⓒ 들찔레 |
마을을 휘감아 도는 학림천을 건너 마을 맨 뒤 높은 자리에 있는 서비정(西扉亭)에 오른다. 서비정은 전주 최씨 집성촌인 이곳에서 태어나 팔십 나이에 을사늑약을 맞았던 최우순 이라는 분이 일본이 회유책으로 준 은사금(恩賜金)을 거부하고 일본군이 강제로 연행하려는 즈음 자결한 충정을 기린 정자이다. 원래 그의 호가 청사(晴沙)였으나 일본이 위치한 동쪽이 싫어 서쪽으로 난 사립문이라는 뜻의 서비로 호를 바꾸고 의병활동을 하였었다고 한다. 이곳 역시 동일한 형태의 돌담과 석축을 쌓은 토대 위에 정자를 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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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비정 돌담아래 떨어진 모과 열매들 ⓒ 들찔레 |
곧은 뼈 같이 단단한 모과나무에서 떨어진 황금색의 열매들이 마당 한가운데서부터 담장 가에 떨어져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아무도 없는 이곳의 석축에 앉아 마당에 떨어진 모과들을 바라본다. 세월이 가고 사람도 가고 또 세월이 흘러 아무 인연도 없는 내가 찾은 마당 위로 댓바람이 지난다. 쓸쓸함이 한량없는 계절에 우국지사의 절개가 볕이 되어 들고 그의 올곧은 정신이 도통한 스님에게서 나온 사리인 양, 모과들이
반짝거리며 누워 있는 것이다.
1869년 최태순이 건립하였다는 최씨고가, 1845년 문중 자식들의 학문을 위해 지었다는 육영재는 잘 보존된 전통가옥이다. 서비정에서 내려오며 찾은 최참봉네라 불리는 최씨고가는 대문이 잠겨있다. 그러나 그렇게 아쉬울 일은 아니다. 진짜 볼거리는 최씨고가와 담을 맞대고 있는 종손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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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최씨 종갓집 사랑채 ⓒ 들찔레 |
혹시라도 빈집을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하여 바깥에서 담 너머를 바라보니 아마도 종부인 듯 할머니 한 분이 마당 앞 텃밭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넌지시 대문으로 발부터 들이밀며 집 구경 좀 하겠노라니 그리하란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혹시 내치기라도 하면 이 마을에 온 목적 하나를 잃는 것이기에 머리부터 집안에 넣었던 터였지만 그것은 기우였음을 곧 알게 되었다.
마당에 들어서며 본 사랑채의 축담을 오르는 기단 석축은 놀랄만한 것이어서 신음 같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잿빛을 머금은 검은 돌들이 마당에 깔려있고 석축 기단을 구성하는 오래된 돌들의 보여주는 모양새는 어디에서고 본적이 없는 것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종갓집 사랑채를 오르내리며 밟았던 탓에 때로는 닳아 윤이 난다. 세월의 무게를 변함없이 지탱해온 축담을 내가 다시 밟는 감상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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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최씨 종갓집 광 ⓒ 들찔레 |
잠시 숨고르기를 위해 사랑채
대청마루에 앉으려다 보니 오른편 광으로 쓰는 건물이 예사롭지 않다. 아주 세밀하게 담을 쌓고 문 위로 공기구멍을 여럿 낸 곡식창고가 주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그 모습그대로 걸작이다. 아직 장독대 옆 작은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가을 빛을 발하고 창고 앞엔 베어 놓은 보라색 가을꽃이 작은
모티브가 되어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넉넉한 공간 하나만을 만들어 두고 정방형에 가깝게 만들어진 창고 하나가 이렇게 색다르게 보일 수 있는 이유도 다름 아닌 점판암을 이용한 돌담쌓기의 방식을 그대로 원용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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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최씨 종갓집 가을 꽃과 담장의 조화 ⓒ 들찔레 |
사랑채를 돌아 안채로 들어서면 뒤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사당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쌓인 돌의 높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범부 하나가 성채의 중심에 이르러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감동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수태산 기슭의 위로 푸른 하늘이 걸리고 대숲 아래에 자리 잡은 종갓집의 풍모는 수려하다. 더하여 높게 지어진 집은 기단석축을 구성하는 돌의 아름다움 때문에 더욱 빛난다. 적당한 돌을 이리저리 맞추어 놓는데는 자로 잰 것이 아닌 눈대중이었을 것임에도 그런 연유로 쌓은 것이 더욱 자연스런 미감을 연출한다. 더구나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석축의 작은 변화들도 미적 요소를 풍요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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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최씨 종갓집 안채의 당당한 풍모 ⓒ 들찔레 |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기단석축과 연이어 만들어진 작은 돌담공간이다. 마치 옛 고성의 한 부분을 축소하여 옮겨놓은 듯 한 모습이다. 작은 창호를 내어
대나무로 살을 입힌 모습이 무슨 용도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은데 닭을 키우던 곳이란다. 이렇게 생긴 닭장은 어디에서고 본 적이 없다. 그 아래로 가을 감국이 번져 흐드러진다. 아까 골목에서 맡았던 가을 냄새의 주인공이 돌담아래에 핀 모습은 그 자체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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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최씨 종갓집 안채 앞의 닭장, 성채를 옮겨 놓은 듯하다 ⓒ 들찔레 |
잠시 기단 석축 계단에 앉아본다. 따스하게 데워진 돌의 온기가 전해져 온다. 나른한 기쁨이 밀려오고 남쪽에서 낮게 뜬 햇볕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것이 싫지 않다. 멀리 앞마당에 종갓집 할머니가 텃밭을 일구고 있으며 좌측 최씨고가의 고래 등 같은
기와지붕에 날렵하게 그림자를 만들며 구름 한 점 지난다. 다시 자리를 옮겨 가정 높은 위치를 점한 사당 앞에 앉아서 담 너머 최씨고가를 바라본다. 지붕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나 마당가 툇마루에 든 볕이 살갑다.
팔십 살이 다 되어간다는 전주 최씨 종가댁 종부의 이름은 박종혜씨다. 거름 담은 포대를 옮기는 것이 힘겨워 보여 몇 포대 옮겨주었더니 일 해 본적이 별로 없는 풋내기의 모습에도 마음을 열어 고마워하신다. 젊은 시절에는 머슴들을 부려 농사일 한 적이 없었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고생을 하신다고 한다. 젊은 시절 늘 끊이지 않았던
손님 접대하던 그 버릇대로 세작을 우려낸 차 한 잔과 수박을 내어오신다. 뿐만 아니라 텃밭에 자라는 상치를 뽑아가란다. 이런 넉넉한 마음 씀씀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준비된 밥이 없어 점심을 나누어주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걱정하시는 분에게서 야박한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길손은 오히려 안절부절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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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갓집과 담을 맞대고 있는 최씨고가 ⓒ 들찔레 |
다 마신 차상을 들어 할머니의 부엌으로 가져다 드리는 길, 근일에 있었던 제사 때 쓴 문어를 꽃처럼 오려 장식한 것이 장독대 위에 널려있다. 가만 들여다보니 문어를 오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한 평생 종부로 살면서 손끝으로 터득한 예술의 경지는 제례를 더욱 빛나게 하였을 것이다.
담장만큼이나 주름이 깊게 파인 종부는 먼 산을 응시하며 담뱃불을 붙이고 말을 잇는다. 살림이 줄어 집을 제대로 고치지 못하여 늘 걱정이란다. 한 때 집은 아홉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마구간과 행랑채등이 뜯겨나가 지금은 다섯 동만 남았다고 한다. 가세가 기운 탓에 선비의 자손이라 공부를 잘했던 아들 네 명 모두 지방에서 학교를 마쳤다는 말에는 조금의 회한이 섞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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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방앗간의 담 ⓒ 들찔레 |
아마도 종부 할머니는 못다 말한 역사를, 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역사를 실에 꿰듯 마음속에 꾸려놓고 계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한 성채같은 종갓집을 쓸고 다듬는 일을 멈추지 않을뿐더러 그냥 객으로 구경거리로 찾는 나 같은 이 하나에게도 활짝 문을 열어 그 속내를 다 보여준다. 소통은 이런 것이어야 하리라.
성 같은 종갓집을 나오는데 할머니가
비닐봉지를 들고 나와 뽑아 놓았던 상치를 안기신다. 겸손한 마음으로 인사를 여쭙고 골목길을 돌아 나올 즈음에도 멀리 동네 입구엔 새 담 쌓기가 한창이다. 무너진 역사를 다시 쌓는 일이다. 전통과 현대의 간극을 메우고 새로운 순기능의 성을 쌓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다시 오리라, 할머니 생전에 담배 몇 갑 사들고 꼭 다시 오리라는 나와의 약속을 한다.
그외 여수 사도 추도마을 옛담장, 경남 의령 오운마을 옛담장, 영암 죽정마을 옛담장, 정읍 상학마을 옛담장이 2007년 추가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전국 18개소의 옛담장이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고전읽기 I [심층 고전읽기] 밀란 쿤데라 '느림'
"50분마다 한 사람씩 프랑스의 도로 위에서 죽어요. 저 사람들 보세요. 주위에서 차를 굴리고 있는 저 미친 사람들. 저들은 거리에서 어떤 할머니가 털리는 걸 보면 지극히 몸사리는 바로 그들이에요. 한데 어째서 운전석에 앉으면 두려움을 모르게 되는 걸까요?"
1968년 소련의 침공 이후 사회주의 개혁 운동을 주도했다가 조국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밀란 쿤데라의 장편소설 '느림'은 첫 장에서 현대인의 이중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한다.
현대인은 일상적인 위험을 경험하며,그로 인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운전석에 앉는 순간 일상적인 두려움과 불안을 잊게 된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불안을 안겨줌과 동시에 불안을 극복(?)하는 힘도 선물하였다. 쿤데라의 말에 따른다면, 그것은 '기묘한 결합'이다.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있다. 그는 시간의 바깥에 있다. 달리 말해서 그는 엑스터시 상태에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나이,자신의 아내,자신의 아이들,자신의 근심거리 따윌 전혀 알지 못하며,따라서 그는 두려울 게 없다. 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는 까닭이다.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끊임없이 자신의 물집들,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자신의 나이를 느끼며,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비물질적 속도,순수한 속도,속도 그 자체,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신으로부터 자유를 얻어낸 이후 인간은 스스로의 이성에 발목이 잡혀 더욱 더 합리적으로 살 것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속도감을 얻어낸 현대인은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더 이상 자유로운 개체로서 나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다만 나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더 빠른 노동과 더 빠른 경험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과학 기술은 이성의 산물이며,이성은 인간 행복을 위해 신과의 오랜 투쟁 끝에 인간이 얻어낸 훈장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인간은 본성적 기쁨을 과학 기술의 속도감과 교환하게 된 것일까?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어디에 있는가,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초원,숲속의 빈터,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현대의 기술 과학 문명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쿤데라의 개탄에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게으름뱅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래서 과학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라고 말이다.
쿤데라는 물질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가자거나 속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게으름뱅이가 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한 체코 격언은 그들의 그 고요한 한가로움을 하나의 은유로써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그들은 신의 창(窓)들을 관조하고 있다고. 신의 창들을 관조하는 자는 따분하지 않다. 그는 행복하다. 우리 세계에서 이 한가로움은 빈둥거림으로 변질되었는데,이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빈둥거리는 자는 낙심한 자요,따분해하며,자기에게 결여된 움직임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쿤데라는 '고요한 한가로움'과 '빈둥거림'을 구분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인은 하루의 '빈둥거림'을 위해 대부분의 '고요한 한가로움'을 '속도'와 맞바꾸는 어리석음을 행한다. 느긋한 사랑은 퇴물이 되고,관료제와 같은 거대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작은 모임에서의 오랜 토론은 한낱 능력 없는 사람들의 할 일 없는 회의가 된다. 따라서 현대인의 삶 전반은 속전속결로 변하게 된다.
속전속결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고요한 한가로움'에 대한 피해의식만을 갖게 되며,그 결과 현대인의 삶은 따분하며,불완전하고,그러한 삶에 현대인은 낙심하게 된다. 현대의 소비중심적인 삶 또한 이러한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지루함과 따분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더 강렬한 소비적 욕망만을 찾아내기에 급급한 것이 현대인의 삶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삶의 연속은 인간의 본성적 행복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너무 열이 차면,묘미가 덜한 법이다. 환락을 쫓아 내닫다가 이에 선행하는 그 모든 감미로움을 흐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느림의 감미로움을 상실케 한 그 서두름. …그에게 남은 건 오직 한 가지 욕구뿐. 어서 빨리 이 밤을,이 잡친 하룻밤을 잊어버리는 것,이를 지워버리고,말소하고,무화해 버리는 것.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그는 속도에 대한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오토바이에 대한 사랑에 충만해 있으며,이 오토바이 위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잊을 것이다. 그 자신마저도 잊어버릴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근대가 출발했다면 쿤데라는 현대인에게 본질적인 물음을 다시 제기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은 서두름에서 오지 않는다. 결과를 염두에 둔 삶은 감미로움을 상실하게 된다. 현대 사회의 성과주의나 학벌주의는 과정이 주는 기쁨보다는 신속한 결과와 효율적인 처리 방식에만 관심을 기울인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인간의 정체성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가? 더 이상 인간은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된 것일까? '느림'은 책을 읽어가는 내내 일상적인 책 읽기를 거부한다. 7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51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소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하나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 속도감 있게 읽어가던 기존의 소설 읽기 방식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한 장 한 장,한 구절 한 구절을 읽으면서 내면의 욕망에 귀 기울이고,쿤데라와 그의 등장인물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느림'은 귀찮고 지루한 한 권의 소설책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길 가에 핀 꽃 한 송이를 보듯이,보따리를 이고 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듯이 읽어간다면,그 속에서 작은 따뜻함을 느낀다면,그것이 곧 우리의 '느림'이고,그것이 곧 '행복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며,우리의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마차 쪽으로 천천히 가는 나의 기사를 좀 더 바라보고 싶다. 그의 걸음걸이의 리듬을 음미해 보고 싶다. 그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의 걸음걸이들은 느려진다. 저 느림 안에서,나는 행복의 어떤 징표를 알아보는 듯하다. …제발,친구여,행복하게나. 난 행복할 수 있는 자네의 능력에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달려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고 있다네."
박미서 (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dolpu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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