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땅딸의 연애론
검색도중에 알게된 좋은 구절입니다....~~
그녀가 아니면 안돼. 이것이 바로 사랑의 진리이다.
한 손에는 완벽한 행복을 거며쥐고 있지만 다른 손은 깍아지른 낭떠러지 끝에 걸려 있는 길을 더듬으며 위태롭게 전진해 가는 것.
첫 번째 결정 작용보다 두 번째 결정작용이 훨씬 더 강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새롭게 쓰는 스탕달의 연애론 (스탕달, 삼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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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좋은 읽을꺼리는

여행에 대한 편집증은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누군가가 발견한 장소에 대한 혐오에서 유래한다.
수많은 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새로운 장소로 계속해서 옮겨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도착한 장소로부터 끊임없이 도망가려는 사람이다 – 27쪽
권태는 생의 기저에서 놀이와 유희, 소설과 사랑등을 발명해 내었지.
인생의 안개는 달콤, 쌉사래한 술인 감미로운 권태를 배어나오게 한다. – 51쪽
아우구스토는 생각했다. '인간이 사물을 이용한다는 것, 즉 그것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다.
사물의 가장 숭고한 기능은 단지 그것을 바라 볼때에 있다. 먹기전의 오렌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러한 문제는 우리 모두가 천국에서 진지하게 신을 명상하고 신 안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바뀔 것이다.
여기 이 가련한 인생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신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신을 이용하는데 급급하여 우산을 펴듯 신을 펴서 모든 악으로 부터 우리를 보호하려고 할 뿐이다.' – 25-26쪽
이 알라디너의 글때문에 읽고 싶은 책

낭만주의의 중요성은 이것이 서구 세계의 삶과 사고를 근본적으로 바꾼 가장 광범위한 근대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내게 이것은 서구인들의 의식에 일어난 단일한 변화로는 가장 지대해 보이며,
19세기와 20세이게 일어났던 다른 모든 변화들은 이보다 비교적 덜 중요하거나,
적어도 이운동에 깊이 영향을 받은 듯하다. –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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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의 연애론에 관한 문학평론가 임헌영씨의 이야기를 읽으시려면 .... >more<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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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의 《연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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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任軒永) : 문학평론가
◆ KBS시청자위원회 위원장 역임
◆ 현재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
◆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 《책과 인생》주간
◆ 20여 저서, 2000여논문, 수필, 칼럼, 평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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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소보다는 카멜레온이 되고 싶었던 남자
한 작가를 글이 아닌 외모로 접근하는 것은 돼지를 인물보고 잡아먹나 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미남이 글 잘 쓴다는 등식은 전혀 성립되지 않는데 스탕달도 예외는 아니다. “대머리였으므로 항상 자주빛 가발을 써야 했고, 코는 납작했고 볼도 볼품이 없었다. 다리 하나가 짧았다. 만년에는 아랫배까지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 못생긴 용모를 속이고자 그는 눈에서 코까지 영리한 기지를 발휘하려 애썼다. ‘황소보다는 오히려 카멜레온으로 있고 싶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세계 문학사상 가장 두꺼운 《연애론(De l'amour)》(1822)을 쓴 작가가 이렇게 추남이었다는 사실은 못생긴 나 같은 남자를 고무케 한다. 사실 미남 묘사보다도 추남을 그린 대목이 왜 그렇게 생생하게 다가서는지 모르겠다. 이런 주제에 여성 묘사에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 모순과 비극.
스탕달(Stendhal, 1783.1.23. - 1842.3.23.)이란 필명으로 더 유명해진 이 작가의 온전한 이름은 마리 앙리 베일(Marie Henry Beile)이나, 소망처럼 카멜레온이 되려고 수시로 자신의 직업을 속였고 2백여 개가 넘는 필명과 가명을 남발했는데, 스탕달이란 “축제 분위기 때문에 영원히 잊혀질 수 없었던 프로이센의 어느 소도시 명칭을 따온 것”(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이기식. 장영은 옮김 《천재와 광기》, 예하, 참고)이다.
프랑스 동남쪽 스위스. 이태리 국경 가까이 산이 많은 드피네 지방 수도 그르노블에서 변호사의 맏아들로 태어난 스탕달은 풍수 지리적으로 산악지대 특유의 내향성과 소심증이 심했다. 뚱보 체격과 이기적인 건 아버지로부터, 낭만적인 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이 외디푸스 컴플렉스 환자는 7세 때 어머니를 잃은 상처로 일생 동안 유독 유부녀 사랑을 구걸하며 보낸 독신이었다.
수학 성적이 좋아 에꼴 뽈리떼끄니끄(종합기술학교)에 진학코자 고향을 떠난 게 1799년(16세) 겨울,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총재정권을 타도하고 통령정권을 세운 이른바 브뤼메르(Brumaire, 霧月) 18일(11월 9일) 직후였다. 장안의 화제는 보나파르트에 대한 찬반이라 시골뜨기 스탕달로서도 초탈할 수 없었는데, 더구나 외할아버지의 소개로 친척인 육군성 차관 피에르 다뤼의 대저택에 기숙했던 관계로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에 환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진학 시험도 포기한 채 다뤼의 추천으로 육군성에 근무하게 된 그는 이듬해(1800년) 나폴레옹의 이태리 원정에 참가했다. 다뤼의 동생인 건달 마르샤르와 동행했기에 전투보다는 뒷전에서 사창가와 여인들 공략이 주목적이 되어, 밀라노의 창녀에게 동정을 바쳤는데 그 대가는 너무 비싼 매독으로 일생동안 고생했다.
든든한 배경은 그를 기병 소위로 임관(나중 중위로 퇴역)시켰으나 이듬해 귀향, 극작가의 꿈을 안고 꼬메디 프랑세즈에 들락거리다가 뜨내기 사내의 아이를 임신한 저급한 여배우를 짝사랑하여 마르세이유 순회공연에 동행, 식료품점 카운터로 취직하여 동거생활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이내 싫증으로 뛰쳐나왔다. 외할아버지의 강권으로 육군성에 다시 들어가(1806. 23세) 육군 경리보좌관, 오스트리아 도이치 등지의 점령지 사정관(司政官)을 거치면서 그의 본성인 여인 섭렵은 더욱 목록을 풍성하게 만들었지만 자신의 이상에 걸맞는 만족할만한 여인은 못 찾은 것 같았다. 1812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에도 참가했지만 여기서도 그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장군 부인이 된 옛 애인을 찾는 일이었는데 역시 허사였다.
1814년(31세) 나폴레옹과 함께 몰락한 그는 7년 동안 제2의 조국이라는 밀라노에서 지내며 잡문 발표와 연애로 소일하던 중 1818년(35세) 사교계의 인기녀 마띨드 비스콘티니 댐보우스끼 부인(1825년 사망)을 만나 평생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자리매김 삼게 되었다. 마띨드는 그의 소설 곳곳에 실제나 변형된 모습으로 등장하여 이 뚱보작가의 속내를 보여주는데, 《연애론》도 실은 그녀를 향한 실연의 상처가 낳은 단편적인 메모를 집대성한 잡문 조각들이다. 당시 이태리는 지역에 따라 식민 종주국이 다를 정도로 분할통치의 극치였는데 북부지역은 오스트리아 지배 아래 있었다. 여인의 꽁무니만 쫓는 스탕달이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자유주의자인지라 오스트리아군은 그를 이태리 독립운동 지하단체인 까르보나리(Carbonari. 숯장수 당원. 스탕달의 단편 <바니나 바니니>에 잘 묘사됨)로 몰아댔고, 이태리인들은 적국의 스파이처럼 눈총을 주기에 1821년 일단 귀국한다.
그 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여러 여인과의 별로 매끄럽지 못한 연애사건의 연속과 집필, 낙담 끝에 자살 시도 등등의 우려곡절을 겪다가 1830년(47세) 7월 혁명으로 자유주의적 왕정(루이 필립왕)이 성립, 스탕달은 오매불망이던 이태리 트리에스테 프랑스 영사로 임명되나 오스트리아 측의 반대로 신임 거부, 로마 교황령으로 이태리 도시 중 제일 보잘 것 없다는 치비타베키아 주재 영사가 되어 죽을 때까지 이 직책에 몸담았다. 관직에 올랐다고 그에게 큰 변화는 없었는데, 예컨대 공무원으로서의 스탕달은 극히 부적격이어서 1836 -39년까지 장기 휴가(처음엔 3주 휴가였으나 외무장관을 구워삶아 연장)로 아예 파리에 머물렀다든가, 여전히 여성에 몰두했으나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점 등등이 뒷소문으로 따라 다녔다. 1841년 3월 뇌일혈로 쓰러져 실어증상이 나타나자 파리로 귀환, 요양 중 이듬해 3월 22일 오후 7시 외무부 앞에서 졸도, 회복도 못한 채 이튿날 새벽 타계했다.
큰 명성도 없이 죽은 이 작가의 유고 뭉치 상자는 치비타베키아에서 그의 사촌인 유언 집행인에게 전해졌으나 워낙 난삽한데다 글씨와 종이들이 헝클어져 있어 그대로 고향 그르노블 도서관으로 송치, 조용히 방치되었다. 그로부터 46년 뒤 폴란드의 청년 언어학자 스트리옌스키가 그르노블 도서관에서 그 사장된 원고를 차근히 정리하여 스탕달 작품 전모를 밝혀내게 되었다. 바로 이 해에 그의 시신도 재발굴 되었는데, 사연인즉 몽마르트르 묘지 11호일대가 도시계획으로 새 도로로 뚫리면서 파헤쳐야만 했다. 이때 작가가 생전에 구상해 두었던 유명한 구절인 “밀라노 사람 아리고 베일,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란 비문이 발견되었고, 이내 전문가들이 나서 위원회를 구성, 작가 스탕달의 전체상을 확립해 주었다. 묻혀질 뻔했던 작가의 운명이었다. 현재의 비문은 1892년 스탕달 50주기 기념으로 세운 것이며 묘지조차도 1962년 스탕달 클럽이 양지 바른 곳으로 옮긴 터에 있다.(《천재와 광기》 및 김성우 지음 《세계문학기행》, 참고).
2. 여성이 얼씬거리기만 해도 어지러워
슈테판 츠바이크는 스탕달의 학창시절 별명이 “걸어 다니는 탑”이었으며, 성장해서는 ‘도배장이‘ ’약종상 얼굴의 외교관‘ ’이태리 푸주업자‘ 등으로 불렸고, “성교의 불안 때문”에 “여성이 근처에만 와도 어지러워진다”고 밝혔다. 1835년 이 작가는 로마 근교 알바노 호수 모래밭에다 자신의 뇌리에 각인된 여인들의 머릿글자를 끌쩍거렸는데, 그 전문은 이렇다.
“V, Aa, Ad, M, Mi, Al, Aine, Apg, Mde, C, G, Ar"
이들이 누군가에 대하여 《세계를 움직인 성애》(D. 월친스키외 3인 공저, 박훤 옮김, 삼성서적)에서 자상하게 규명했는데 그 면면들은 이렇다.
V ; 빌지니 퀴브리 ; 그르노블에서 열 살 때부터 몰래 흠모했던, 말 한마디 건너보지 못한 키 큰 유부녀 여배우.
Aa와 Apg ; 안젤라 삐에뜨라그루와 ; 밀라노 시절에 알게 된 흑발의 정열적인 유부녀. 수줍어 사랑의 고백도 없이 헤어졌다가 11년만에 다시 만나 구애, 그녀가 간신히 들어주는 척 꾸며 관계를 갖자 스탕달은 감격해 그날 일기에다 “9월 21일 오전 11시 반 드디어 안젤라 정복”이라고 썼는가 하면 멜빵끈에다 “1811년 9월 21일 오전 11시 30분”이라고 수를 넣은 건 유명짜한 사건이다. 그녀는 처음엔 스탕달을 약 올렸으나 나중 떠나려 할 땐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바지를 움켜잡고 울며 놓아주지 않았다.
Ad ; 아델 ; 12세 소녀 때 알게 되어 4년 걸려 간신히 젖가슴에 손을 얹어본 정도로 종막.
M : 멜라니 길벨 ; 꼬메디 프랑세즈의 여배우로 1805년 여름부터 이듬해까지 마르세유에서 동거. 나중 러시아 장군의 부인이 됐는데 모스크바 원정 때 그녀를 찾아 시내를 헤맴.
Mi : 빌헤르미네 폰 그리스하임 ; 프러시아 사령관의 딸로 구애 했으나 거절당함.
Al ; 안젤리느 베레이텔 : 오페라 가수로 하룻밤 새 9회의 오르가즘에 이르는 등 깊은 육체관계를 나눔.
Aine : 알렉산드리느 다뤼 ; 사촌 피에르의 아내. 그녀 장갑을 만지는 등 페티시즘의 대상.
Mde : 마틸드 부인 ; 밀라노에서 1818년 3월 4일 발동된 연심이 1821년 이곳을 떠날 때까지 정열적으로 짝사랑했던 장군의 아내. 그녀를 보고 스탕달은 이전 여인과의 관계를 유희적 연애로 치부하고 마틸드에게서 처음으로 헌신적인 정열적 연애감을 가졌다고 함.
C : 클레망띠느 뀌리얼 백작부인 ; 스탕달이 41세 때 파리에서 만난 36세 유부녀. 1824년부터 2년간 그녀가 스탕달에게 보낸 편지가 250통이나 될 정도로 정열적인 사랑이 성립, 그녀의 별장 지하실에 숨어 사흘간 밀회를 했음. 그러나 그녀가 먼저 작가를 버리고 떠났다가 다른 애인 관계로 자살.
G : 줄리아 리니엘리 ; 토스카나 대공국 공사의 양녀로 문학 소녀. 스탕달에게 드물게 여자 쪽에서 먼저 프로포즈한 경우로 육체관계까지 가져 작가가 진지하게 그녀의 양부에게 구혼했으나 거절당함.
Ar : 알베르티느 드 뤼방프레 ; 신비학. 강신술에 심취한 야릇한 여인으로 잠시 관계.
이렇듯 실패한 연애지상주의자가 쓴 《연애론》은 “백 명의 독자를 위해서만 쓰겠다. 내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대상은 불행하지만 그러나 친애할 매력 있는 사람들, 조금도 위선적인 면을 갖고 있지 않으며 ‘도덕적’인 면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바친 “일종의 광기에 대한 정확하고도 과학적인 기술” 혹은 “연애를 일종의 병이라고 간주하고 그 모든 증상의 정확하고 상세한 기술을 하는 일” 내지 “연애 생리학의 기묘한 형식”이라고 <서문>에서 밝힌다. 제목으로 봐서는 엄청나게 팔릴 것 같았지만 11년간 고작 17부가 판매된 이 난삽하고 재미없는 사랑의 철학서는 2부와 단장(斷章), 보유편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제1부에서 연애의 이론적인 기초를 두루 다룬 후, 2부에서는 유럽 각국의 국민성에 따른 연애론과 여성 교육, 결혼제도 등을 논했다. <단장> 편은 에피그람과 삽화를 실었고, <보유> 편에서는 각 판마다의 <서문>들과 몇 가지 추가 항목을 뒀다.
그 목차에 따라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제1부]
전39장으로 이뤄진 연애론의 개관. (1) 정열적인 사랑, (2) 취미적인 사랑, (3) 육체적인 사랑, (4) 허영적인 사랑이란 4종으로 연애를 나눈 저자는 이 중 진실한 것은 첫 번째라고 판단한다. 이어 유명한 사랑의 7단계 발생론이 전개된다.
(1) 감탄, (2) “저 사람에게 키스하고 키스를 받으면 얼마나 즐거울까”하는 생각, (3) 희망, (4) 사랑의 탄생, (5) 제1의 결정작용(結晶作用. Crystallization), (6) 의혹의 발생, (7) 제2의 결정작용.
뭔지 알 듯 말 듯한 (5)는 “한없는 자기만족 속에서 스스로의 온갖 행복을 자세히 되새긴다”고 풀이한다. 잘츠부르크 염갱(鹽坑)에 앙상한 나뭇가지를 깊숙이 넣었다가 두세 달 뒤에 꺼내면 반짝거리는 결정체가 되어 있다는 설명을 곁들이는데, 요컨대 “쾌락을 맛보라고 명하며 뇌에 피를 보내주는 자연의 본성이나 사랑하는 상대의 미점과 함께 쾌락도 증대된다고 하는 의식”을 뜻한다. (7)은 “그녀가 내게 주는 기쁨은 이 세상에서 오직 그녀로서만이 가능한 것이다”는 경지로 풀이한다. “그리하여 결정작용은 새로운 매력의 발견에 착수”하는데, 대개 “여자 쪽이 훨씬 강하다”.
질투는 “천국의 희열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심장에 단검을 들이대는 것”으로 “유일한 요법은 아마도 연적의 행복에 다가가서 잘 바라보는 일”이라고 충고한다.
[제2부]
모든 연애와 상상력은 6종의 기질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른바 기질 연애론이 제기된다.
(1) 다혈질(多血質) ; 프랑스인들의 기질.
(2) 담즙질(膽汁質) ; 스페인인.
(3) 우울질 ; 독일인.
(4) 점액질(粘液質) ;네델란드인.
(5) 신경질 ; 볼테르의 경우.
(6) 역사질(力士質) ; 밀론(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전설적인 장사).
“기질의 영향이 야심. 탐욕. 우정. 등에서 느껴진다고 하면, 생리적인 것의 혼입이 불가피한 연애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이에 대한 자세한 보충설명은 없이 정열. 취미. 육체. 허영적 연애가 이 기질에 따라 달라진다고 못 박는다. 이어 “정부 또는 국민성에 의한 습관의 차이와 결부시켜” 6가지의 형태를 제시한다.
(1) 콘스탄티노플에서 볼 수 있는 아시아적 전제정체.
(2) 루이 14세 식 절대왕정.
(3) 영국처럼 헌장의 가면을 쓴 귀족제, 또는 부자의 이익을 위한 국민 지배.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성서에 의한 도덕의 규율을 따른다.
(4) 아메리카와 같은 연방공화정체. 만인의 이익을 위한 정부.
(5) 입헌군주제. 즉 …… (예를 생략했지만 프랑스와 같은 경우임을 암시. 나폴레옹 몰락이후 루이 18세 통치 기간은 입헌군주제였는데, 작가는 프랑스를 (6)에 포함시키고 있다).
(6)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처럼 혁명 상태에 있는 국가.
“이와 같은 연애의 일반적 고찰을 거쳐 우리들은 다시 연령의 차이를 고찰하고, 마지막으로 개인적 특성에 도달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목표에는 이르지 못한 게 이 저서이다. 아마 그의 《연애론》이 실패작인 건 곧 그의 실제 연애가 실패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여기서부터 프랑스. 이태리. 영국. 독일. 미국. 아라비아. 스위스 등 각 국민성에 따른 연애의 차이를 논하는데 너무 진부하다. 마지막 59장이 유명한 <베르테르와 돈 주앙>으로 그의 문장력이 빛난다.
"돈 주앙들의 자랑은 유혹한 여성의 가치보다는 숫자"에 있으며, "베르테르들의 성공에 비밀이 필요한 것처럼, 존 주앙들의 승리에는 선전이 필요하다"며 돈 주앙파를 “인생이라는 큰 시장에서 취득하기만 할 뿐 결코 지불하지는 않는 나쁜 상인”으로 비판하는 관점을 고수한다. “돈 주앙풍의 연애란 사냥의 취미와 같은 종류의 감정이다. 그것은 대상의 변화에 의해 불러일으켜지고 여러분의 능력을 늘 불명 속에 두는 활동의 욕구”로 단정한데 비하여 “베르테르풍의 연애란 한 편의 비극을 좀 더 잘 쓰고자 몇 번이고 고쳐 쓰는 학생의 감정과 유사하다.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의 새로운 목표이며, 모든 것이 그것과 관련 지워지고 그 목표가 모든 외관을 일변 시킨다”고 정의하며, 비록 실연일지라도 그것은 “기묘한 쾌락”을 맛보게 된다고 했다.
부록 편 맨 앞에 <사랑의 법정>이 나온다. 1150-1200년에 프랑스에는 사랑의 법정이 있었는데, 그 법조문이 앙드레 사제의 한 저술에 전해 온다며 전문을 소개하고 있다.
제1조 혼인신고는 연애에 대항할 만한 합법적인 변명이 되지 못한다.
제2조 숨기지 못하는 자는 연애를 할 수 없다.
제3조 누구라도 동시에 두 사람과의 연애는 할 수 없다.
제4조 연애는 끊임없이 성장하든가 또는 끊임없이 감소한다.
제5조 폭력을 통해 연적에게서 빼앗는 연애는 묘미가 없다.
제6조 남자는 대체로 성년이 되지 않으면 연애할 수 없다.
제7조 연인 중 한쪽이 사망했을 경우 다른 한쪽은 2년 이상 독신으로 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8조 누구라도 충분한 이유가 없이는 연애할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는다.
제9조 누구라도 연애에 대한 자신감(사랑 받는 희망) 없이는 연애를 할 수 없다.
제10조 연애는 대개의 경우 탐욕으로서, 집에서 쫓겨난다.
제11조 결혼하고자 하면 수치가 되는 여자에 대해서는 연모의 감정을 품지 말라.
제12조 참된 연애는 사랑하는 여자 이외의 사람에게서 애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제13조 공개된 연애는 영속하는 경우가 드물다.
제14조 너무나 쉬운 성공은 곧 사랑의 매력을 잃는다. 장애는 연애에 가치를 준다.
제15조 모든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창백해진다.
제16조 연모하는 사람을 우연히 보게 되면 전율한다.
제17조 새로운 연애는 오래된 연애를 좇는다.
제18조 신사만이 연애할 자격이 있다.
제19조 쇠멸하는 연애는 신속히 사라지고 되살아나는 일이 드물다.
제20조 연애하는 사람은 항상 두려워한다.
제21조 참된 질투에 의해 애정은 항상 증대한다.
제22조 의혹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질투에 의해 애정은 증가한다.
제23조 연애로 고뇌하는 자는 적게 자고 적게 먹는다.
제24조 연애하는 자의 행위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일로 귀일한다.
제25조 참된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고 하는 것 이외의 좋은 것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제26조 연애는 어떤 것이라도 연애로서 거부하지 못한다.
제27조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며 결코 싫증을 내는 일이 없다.
제28조 연인은 단순한 추측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불길한 것을 의심한다.
제29조 지나친 쾌락은 사랑을 방해한다.
제30조 사랑에 빠진 사람은 중단하는 일없이 꾸준히 연모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한다.
제31조 한 여자가 두 명의 남자에게, 한 명의 남자가 두 명의 여자에게 연모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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