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바위, 나무


앞글에 이어 또다른 시 한편.

소설가 이문구 선생의 <한계령>입니다.


               한계령

바위가
자라서
산이 된
산.
산이
자라서
나무가 된




시가 품고 있는 깊은 속을 살피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제깜냥껏 보자면.

과학적 사실로 따지자면야
산이 자라서(풍화되어서) 바위가 되고, 바위가 자라서(풍화되어서 흙이되고 이윽고) 나무가 됩니다.
다시말해 나무의 할아버지는 산이고 나무의 애비는 바위입니다.
인간은? 인간은 침입종이죠.

 이문구 선생은 그 반대로,
바위가 자라서 산이 되고 산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고 보고 있네요.
깍여서 바위가 된 위쪽에 산이 한꺼풀 더 있고 그 위에 나무로 뒤덮힌 산의 정경을 말했을 뿐일까요?
아니면, 나무의 소중함을 곰삭여 보자는 말일까요?

저는 후자로 생각합니다.
산이 자라야 나무가 생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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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하다 만난 한계령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세개


1. 양희은과 한계령

이러한 한계령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아마 양희은씨가 1985년에 발표한 노래 "한계령" 때문일 것이다. 계간 < 시인세계 > 에서 2004년 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글 짓는 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 5위에 뽑힐 정도로 가사가 시적이며 서정적인 선율을 지니고 있는 노래 "한계령"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계령"을 부른 양희은씨는 이 노래를 부른 지 10년이 지나서야 한계령에 처음 와 봤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은 주위 사람들이 양희은씨에게 '사기'라고 했단다. 그럴 때마다 양희은씨는 '그럼 연극배우들은 암환자 연기할 때 암 걸려보고 하냐'며 대꾸하곤 했다는 일화가 있다.




한계령 휴게소와 건축가 김수근

한계령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르는 곳이 한계령휴게소이다. 거대한 자연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 속에 부드럽게 안겨 있는 건축물, 혹여 한계령과 설악의 경치를 보고자 하는 이들의 눈길을 현혹시킬까 두려워 온통 검정으로만 칠해져 있는 외관, 남설악에 대한 탁월한 전망을 제시하는 휴게소 테라스 등 한계령휴게소는 겸손의 미학을 지니고 있는 건축물이다. 그럼으로써 가장 훌륭하게 자연과 어우러져 있으며, 미시령휴게소나 대관령휴게소와 비교해 생각해보면 더욱 한계령휴게소가 자연친화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한계령휴게소는 미국의 < 타임 > 지에서 '한국의 가장 경탄할 만한 훌륭한 건축가'라고 평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물이다. 이 땅에 현대건축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건축도 예술임을 증명한 김수근 선생은 건축을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 여겼다. 한계령휴게소는 창암장과 더불어 김수근 선생의 건축작품 중 자연과 가장 어우러진 건축물로 꼽힌다.

그러나 창암장이 도심 속의 자연속에 자리하고 있는 반면 한계령휴게소는 설악이라는 거대한 자연 속에 삽입된 것이다. 한계령휴게소는 한계령의 정취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존의 지형을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건물이 자연스럽게 대지에 삽입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작품성이 인정되어 한계령휴게소는 1982년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수상하였다.


한계령의 옛이름

문헌상 가장 최초로 등장하는 한계령에 관한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의 "소등라령(所等羅嶺)"이다. 소등라령을 국역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바드라재'로 번역하였다. 속초여고 주상훈 교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고개의 원래 이름은 '바드라'였다. 이 바드라를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이두식으로 소등라(所等羅)라고 표기하였다가, 그 후 조선시대 읍지류에서 발음상 편한 소동라(所冬羅)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후기 문헌인 택리지, 대동여지도, 증보문헌비고 등에서는 전부 한계령을 '오색령'으로 부르고 있다. 현재와 같이 한계령으로 명명된 것은 1968년 공병부대가 한계령 도로공사를 인제쪽에서부터 시작하다 보니 인제군 한계리의 이름을 따 한계령이라 하였다.
한계령과 김재규

현재의 한계령 도로는 1968년 김재규가 사단장으로 있던 1102 야전 공병단에서 착공하여 1971년 완공하였다. 한계령 도로의 완공을 기념하여 한계령 108계단 위에 있는 설악루라는 정자 옆에 공덕비를 만들었으며 "설악루"라는 현판은 김재규 당시 사단장이 직접 썼다고 하며, 현재까지 전해온다.

출처 : http://media.daum.net/culture/ ··· 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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