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즘과 한국 산악계
나치즘과 한국 산악계(의 정신)이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지만,
곳곳에 그 관련의 혐의가 남아 있다.
산악계 군기가 군대보다 더 쎄다는 풍설은 단순히 등산이 위험한 종목이라서가 아니라
(다른나라, 유럽에서도 똑같이 위험한 종목이지만 군기가 우리나라만 했을까?)
일본 제국주의와 그때의 군대문화의 유습일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일본은 유럽에서 배웠다.
"자이루 파토나와 함께 자이루를 메고 하켄을 박고......."
<우에무라 나오미>의 자서전- 내청춘 산에 걸고-을 보면, 당시 일본 대학 산악부의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고
한국 대학 산악부가 그대로 오배랩된다.
인권운동가 서준식씨의 친동생인 재일동포 서경석씨의 책 - 소년의 눈물 - 을 보면
그가 산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는 물론 일본어로 된 책들을 읽는다.
그런데 의외로 그가 거론한 산서들의 목록이 새삼스럽지 않다.
바로 우리나라 산악계도 일본과 똑같이 산악계 고전들이라고 앞세우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고전들은 한국의 원로 산악인들이 번역한 책들이다
일차적으로 일본어로 번역된 책들을 통해 원전을 접했거나, 또는 일본어를 중역했을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김영도 옹의 후기를 보면 일본어 번역 산서를 탐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과 한국의 산악계 도서 목록이 비슷해진 거다.
산악계의 원로들이 번역할 책을 선정할 때 일본이라는 창을 통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 결과 그들의 번역물들은 주로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서적에 치중된다.
반면 최근 미국의 산악서적의 번역은 전문 산악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산을 모르는 번역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은 시사할 만 하다.
그런데 일제가 독일 히틀러와 동맹관계였다는 사실.
그리고 히틀러가 아리안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산악계를 지원했다는 사실.
일반인들에게야 하인리히 하러는"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명상물(?)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최초로 아이거 북벽을 오른 대단한 젊은 클라이머였는데,
이 어린! 친구의 목숨을 건 등반의 이면에는 아이거 북벽 초등정에 걸린 훈장도 무시하지 못했으리라.
등반후 히틀러의 용안을 직접 알현하는 영광을 누린다.
심지어 ss 대원이라는 설도 있는데 그는 평생동안 이 사실을 감추고 부인한다.
또한 히틀러는 제국의 전투정신을 각성시키기 위해 고난에 찬 등반영화의 제작에 열을 올린다.
일제시대때 또한 이런 영화를 수입해서 한국에 틀어 대었다.
일제시대때 이런 독일의 등반영화에 충격을 받아 산악계에 입문한 사람들의 기사를 읽은적이 있다.
- 팀을 위해 나를 희생하며,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온갖 고난을 이겨서 결국 정상을 정복했다.-
그들이 찍은 영화의 스톨가 대충 이런 정신이고, 이는 군인정신과 그리 멀지 않고.
이게 앞으로 한국산악계의 나침반이 된다.
"까라변 까!"
자일이 딱 한동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억울해고 배알이 꼴려도 "선배가 까라고 하면 까"야 등반파티에
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후에까지, 어느 대학 산악부원의 회고담에 의하면 (기억이 가물되지만) 심지어 6.25전쟁 이후에 까지
산에서 독일의 나치 군가가 불리워졌다고 한다.
(지금 산노래에도 독일풍의 노래가 남아 있으리라.)
시대가 나치 군가와 일본 군가를 세탁해버리는 바람에 그런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없어 궁금했다.
나치 군가는 붉은 군대의 군가처럼 피를 끓게 한다고 한다.
어느 주석(酒席)에서 술이 얼콰해진 노학자로부터 결례를 무릅쓰고 나치군가를 청해 들은적 있다.
....
....
오늘 우연히 인터넷 검색하다가
독일군가는 한국어였다 라는 개그성 제목을 클릭하여서 독일 군가를 들어보았다.
독일군가인지 나치 군가인지 모르지만....
듣자마자 위와 같은 상념이 떠올라서 몇자 끄적인다.
* 만약 이런 글을 주류 산악계의 주류 산악인이 정색해서 올리면 어떻게 될까?
* 참조 : 독인 군가는 한국어였다.
http://search.daum.net/cgi-bin ··· %25f6
곳곳에 그 관련의 혐의가 남아 있다.
산악계 군기가 군대보다 더 쎄다는 풍설은 단순히 등산이 위험한 종목이라서가 아니라
(다른나라, 유럽에서도 똑같이 위험한 종목이지만 군기가 우리나라만 했을까?)
일본 제국주의와 그때의 군대문화의 유습일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일본은 유럽에서 배웠다.
"자이루 파토나와 함께 자이루를 메고 하켄을 박고......."
<우에무라 나오미>의 자서전- 내청춘 산에 걸고-을 보면, 당시 일본 대학 산악부의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고
한국 대학 산악부가 그대로 오배랩된다.
인권운동가 서준식씨의 친동생인 재일동포 서경석씨의 책 - 소년의 눈물 - 을 보면
그가 산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는 물론 일본어로 된 책들을 읽는다.
그런데 의외로 그가 거론한 산서들의 목록이 새삼스럽지 않다.
바로 우리나라 산악계도 일본과 똑같이 산악계 고전들이라고 앞세우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고전들은 한국의 원로 산악인들이 번역한 책들이다
일차적으로 일본어로 번역된 책들을 통해 원전을 접했거나, 또는 일본어를 중역했을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김영도 옹의 후기를 보면 일본어 번역 산서를 탐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과 한국의 산악계 도서 목록이 비슷해진 거다.
산악계의 원로들이 번역할 책을 선정할 때 일본이라는 창을 통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 결과 그들의 번역물들은 주로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서적에 치중된다.
반면 최근 미국의 산악서적의 번역은 전문 산악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산을 모르는 번역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은 시사할 만 하다.
그런데 일제가 독일 히틀러와 동맹관계였다는 사실.
그리고 히틀러가 아리안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산악계를 지원했다는 사실.
일반인들에게야 하인리히 하러는"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명상물(?)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최초로 아이거 북벽을 오른 대단한 젊은 클라이머였는데,
이 어린! 친구의 목숨을 건 등반의 이면에는 아이거 북벽 초등정에 걸린 훈장도 무시하지 못했으리라.
등반후 히틀러의 용안을 직접 알현하는 영광을 누린다.
심지어 ss 대원이라는 설도 있는데 그는 평생동안 이 사실을 감추고 부인한다.
또한 히틀러는 제국의 전투정신을 각성시키기 위해 고난에 찬 등반영화의 제작에 열을 올린다.
일제시대때 또한 이런 영화를 수입해서 한국에 틀어 대었다.
일제시대때 이런 독일의 등반영화에 충격을 받아 산악계에 입문한 사람들의 기사를 읽은적이 있다.
- 팀을 위해 나를 희생하며,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온갖 고난을 이겨서 결국 정상을 정복했다.-
그들이 찍은 영화의 스톨가 대충 이런 정신이고, 이는 군인정신과 그리 멀지 않고.
이게 앞으로 한국산악계의 나침반이 된다.
"까라변 까!"
이게 그리 비약은 아니다.이 정신은 열악한 한국 산악계의 장비현황을 물적토대로 삼아 공고해진다.
최근에도 엄홍길을 주인공으로 하는 각종 영화(KBS MBC , SBS)의 스토리 라인을 보라.
똑같다. 똑같아.
----팀을 위해 나를 희생하며,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온갖 고난을 이겨서 결국 정상을 정복했다---
엄홍길은 여기다가 횟집의 스끼다시로 "산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문어발을 내세운다.
자일이 딱 한동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억울해고 배알이 꼴려도 "선배가 까라고 하면 까"야 등반파티에
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후에까지, 어느 대학 산악부원의 회고담에 의하면 (기억이 가물되지만) 심지어 6.25전쟁 이후에 까지
산에서 독일의 나치 군가가 불리워졌다고 한다.
(지금 산노래에도 독일풍의 노래가 남아 있으리라.)
시대가 나치 군가와 일본 군가를 세탁해버리는 바람에 그런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없어 궁금했다.
나치 군가는 붉은 군대의 군가처럼 피를 끓게 한다고 한다.
어느 주석(酒席)에서 술이 얼콰해진 노학자로부터 결례를 무릅쓰고 나치군가를 청해 들은적 있다.
....
....
오늘 우연히 인터넷 검색하다가
독일군가는 한국어였다 라는 개그성 제목을 클릭하여서 독일 군가를 들어보았다.
독일군가인지 나치 군가인지 모르지만....
듣자마자 위와 같은 상념이 떠올라서 몇자 끄적인다.
* 만약 이런 글을 주류 산악계의 주류 산악인이 정색해서 올리면 어떻게 될까?
* 참조 : 독인 군가는 한국어였다.
http://search.daum.net/cgi-bin ··· %25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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