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터호른 초등후 등산금지론의 의미는...

******************


에드워드 윔퍼의 마터호른 초등은 하산중 일행중 4명이 추락사함으로써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등산에 대한 비난과 함께 등반금지론까지 대두하였다는데, 과연 이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등반금지론이 근대 알피니즘을 보는  좋은 프레임인 것 같습니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1 주로 어느나라에서 금지론이 대두하였을까요?
영국? 아니면 마터호른 알프스 현지.

죽은 사람들은 현지 가이드들입니다. 따라서 금지론이 어디에서 대두되었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30년대 낭가파르바트 독일대 대참사후 독일에서는 어떠했을까요?
1980년대 한국대 마나슬루 대참사후 한국에서는 어떠했을까요?
만약 이런 예가 그때가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가 네팔원정하였을 경우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2. 중요한 것은 왜 금지하려 들었을까요?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당시 시대상황과 이 사건의 파급효과에 대한 자료가 미비하기에, 비견한 예를 들어 봅니다.

만약에 스위스 레만호수에서 배를 타고 놀다가 4명이 익사하였다고 하면 수영금지론이 대두했을까요?
만약에 탐험갔다가 4명, 아니 40명이 실종되었다고 하면 탐험금지론이 야기되었을까요?
만약에 전쟁이 발발하여 4000명이 전사했다고 하면 종전론이 팽배할까요?

제 생각은 아니다 입니다.

레만호수에서 배를 타고 놀다가 선체결함 또는 운전미숙으로 인해 익사하였다 해도 '그날의 사건사고란'에 실릴뿐. 수영금지론은 없을겁니다.

왜냐하면, 지가 재미있게 놀다가 물에 빠진 거니까요.

탐험갔다가 40명이 실종되었다고 해서 금지론? 아닐겁니다.
훨씬 전이지만, 16세기 17세기 향신료 무역때 10척의 선단이 출발하여 1척만 돌아와도 대박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탐험은 돈벌러 가는 것이고, 떼돈 벌려고 하다가 죽은 것은 그렇게 낯선 모습이 아니니까요.

전쟁이 발발하여 4000명이 죽었다고 해서 국민들은 꿈쩍도 안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개인이 목숨을 버려도 좋을 명분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으니까요.

ㅁㅁㅁㅁㅁㅁㅁㅁ

요는,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알피니즘이라고 하는 것의 외양이

'수영처럼 재미있게 노는 여가생활하는 것 같지도 않고.
탐험처럼 돈벌러 오지로 가는 것도 아니고,
전쟁처럼 명분이나 당위성이 있는 것도 아닌걸로 보였던 터라 등산 금지론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근대 알피니즘은 수영도 아니고 탐험도 아니고 전쟁도 아니라는 거.
재미있게 노는 것. 돈버는 것 아니고. 개인차원의 명분 너머에는 거창한 게 없다는 거.




ㅁㅁㅁㅁㅁㅁㅁㅁㅁ


에드워드 윔퍼의 마터호른 초등의 의미는 대단합니다.

현대 등반사에서 단 하나의 이정표를 꼽아야 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에드워드 윔퍼(1840~1911)의 마터호른 초등(1865년)이다.(심산)
에드워드 윔퍼가 “세계는 나의 발 아래에 있다”고 기쁨을 표시했던 마터호른 초등은알프스 황금시대의 최후를 장식하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용대)

이것이 알피니즘사의 정설입니다.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씌여지는 겁니다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의문꺼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윔퍼 일행은 하산 도중 등산사상 가장 충격적인 조난사고를 당한다. 7명을 연결했던 로프가 낙석에 맞아 끊어져 일행 중 4명이 1200m 아래의 마터호른 빙하로 추락사한다. 이 사고로 당시 세상 사람들은 인명사고를 내는 등산에 대하여 비난의 소리를 높였으며 등반 금지론까지 대두하였다.

원문을 읽으시려면


more..





비극은 당일 하산 길에서 벌어진다. 윔퍼 일행들을 하나로 묶었던 자일이 낙석에 의하여 끊어지는 바람에 그들 중 4명이 1,200m 아래의 빙하까지 추락하여 사망한 것이다. 등반사에서 ‘마터호른의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이 사건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사람들은 마터호른 초등을 찬양하기보다는 무모한 짓을 하여 사람을 4명이나 죽게 만들었다면서 윔퍼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윔퍼는 사고경위서를 제출하고 법정에 출두해야 했으며 판결과는 무관하게 끔찍한 여론재판에 시달려야 했다. 그 모든 과정들이 당시 25세의 앳된 청년에게는 몹시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윔퍼는 결국 불멸의 초등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박수는커녕 치유할 수 없는 상처만을 받고 알프스라는 무대에서 퇴장하고 만다.


원문을 읽으시려면..

more..




About this en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