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과 현대사...
지리산. 가야산. 설악산. 오대산 등등과 북한산의 차이는 과연 뭘까요?
북한산은 천팔백만명이 찾는 산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사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탈색된 무색무취의 산, 냄새도 색깔도 없는 산입니다.
텅빈 산입니다.
잊혀진 산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부재한 공간입니다.
그러다보니 배움이 없는 산입니다. 등산화로 반들반들거리기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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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는 근대사도 사실 변변찮습니다만, 현대사 관련해서도 지금 당장생각하기엔 6.25 이후에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음, 다시 곰곰생각하니 김신조 일당의 루트가 있었네요. 그들의 루트도 현대사라고 하면.....)
기껏해서 여야 정치인들이 쑈삼아 북한산 오르는게 뉴스깜이 되긴 하지만, 이런 건 역사가 아니잖아요.
역사가 없다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북한산에게는 슬픈 이야기이도 하지만,
진짜 슬픈 이야기는 6.25에 있었습니다.
사람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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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지하철을 타서 읽을꺼리를 찾아 선반을 두리번했더니, 담배갑만한 책자가 눈에 띄더군요.
낮은 목소리로 설득력 있는데다 자그마치 400만부나 팔렸다는 점에서 참 인상적인 책이었는데,
특히나 이 책에는 북한산 관련해서 한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의외의 사실이 있어 좋은 자료로 책꽂이 꽂았다가 그민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 곽선희 목사의 설교집인줄 알고 사랑의 교회에까지 이 책자를 찾기 위해 전화도 한적이 있을정도로 애좀 태웠습니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책꽂이에서 얇은 이 책이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더군요.
얼마나 반갑든지......
1956년 초판인 이 책에는 6.25와 관련하여 북한산이 아래와 같이 잠간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국군에서 펴낸 6.25전사를 보면 이 부분이 우리측 시각에서 '승리의 전투로' 자세히 나오겠지요.
제가 읽은 한국군,유엔군 전사에 의하면 대충 이렇습니다.
연희전투(무악재전투)에 패한 후 인민군은 구파발쪽으로 도주합니다.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미군 지휘부는 그냥 도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일망타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행기로 토끼몰이를 하듯이 인민군을 북한산쪽으로 이끈다음. 퇴주로를 막고 폭격을 시작합니다.

당시 북한산은 헐벗은 산이었습니다. 미군의 비행기로 때려 붓는 폭탄과 기창소사아래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미군은 도시전체가 사라질정도로 평양대공습을 해댔습니다.
말그대로 후진국 민간인 학살이었다는 점에서, 아우슈비츠 학살하고도 비견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 보면, 패퇴하는 정규군인 인민군을 몰살하기 위한 북한산 공습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한경직 목사의 글은 바로 그부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마겟돈, 아비규환이었겠죠.
이부분에 관해서는 ☞ http://www.re-rock.com/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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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에서는 북한산과 관련하여 이부분을 거론하지 않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북한산. 백운산장에는 이와 같은 위령탑이 있습니다.
해마다 현충일인가에 한국산악회와 대산연이 합동 위령제를 지냅니다만.
이 탑의 주인공은 그러나 산악인이 아닙니다.
검색해보면 아시겠지만, 후퇴하다가 길을 잘못들어 외따로 북한산으로 들어왔다가 자살한 신원불명의 국군 소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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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계곡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한국산악계는 알고 있을까요?
알아도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을까요?
산악계에서는 정치를 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산악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옳은 선택이지요.
허나.
백운산장의 위령탑에 보여주는 아름다운 휴머니즘이
좌우를 넘어서 인민군들의 비극을 위령할 필요가 있고 지금이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산은 천만 서울시민이 지하철로도 찾는 도심한복판 산으로 세계에 이런 산이 없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산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슬픈 산이기도 합니다.
가치있는 일이라면, 산악계가 앞장설 위치에 있지 않을까요?
미력하나마 저도 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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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때와 관련하여 어느 블로거가 쓴 내용입니다.
625 전쟁 때 9.26 서울탈환 이후 서울에 주둔하던 인민군 부대들은 대개 북한산 줄기를 타고 북으로 도주했지만 김일성의 후퇴명령을 완강히 거부하던
인민군 6사단장 방호산(方虎山)-(중공팔로군계열) 휘하 연대급 패잔병 일단이 지금의 북한산 일원(진관사와 삼천사 골짜기)에서 은거암약하다가
9.28 서울수복후 제1성으로 지시한 이승만 대통령의 38선 진격명령에 의해 맹렬히 북진하던 국군 3사단 수도군단 등과 고양인근에서 격돌. 쫓기고 쫓기다 이곳 북한산 진관사와 삼천사 인근 골짜기에서 최후를 맞이 합니다.
당시 삼천사 진관사 골짜기는 그야말로 선혈이 흐르던 계곡이었다는군요.(참조- 이태 著 남부군 및 수도군단사)
수주간의 치열한 전투끝에 인민군 연대급 패잔병 전원몰살. 하지만 그 화려했던 진관사도 전화(戰火)에 싸그리 불타버리고 맙니다...
위령탑 사진 출처
http://cafe.daum.net/nature200 ··· 8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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