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도 옹에 대한 단상 하나.

작년에 김영도 옹의 출판기념회인가 하는 자리에서인가,
그분이 저술하고 번역한 책이 자그마치 16여권이 된다든가...
옹의 산악운동을 한마디로 논하자면, 중세와 다름없든 한국산악계에 홀연히 나타난 계몽주의자"라고 하면 될까요?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조그마한, 가위바위보 산악동네에다가,
퇴색되고 왜곡되는 '알피니즘'을 쉼없이 주창하면서 지적인 자극과 격려를 준 분입니다.
제목역시 그러합니다.
제목은 허투루 정하지 않는다고 할 때,
김영도 옹의 책 제목은 그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 통틀어 놓고 보아서도 류를 달리 합니다.
어려서부터 클라이밍을 하지도 않은 그의 책제목은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비분강개조에 가깝습니다.
그 이유를 들라면 아무래도 그분의 산행역정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철들자마자 산에 푹빠진 여느 산악인들과 달리, 그는 40대 중반에 공적인 이유로 산악계와 연을 맺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산악계에 불알친구가 없습니다.
어려서 겪고, 나이가 들수록 더자주 키득키득 주고받을 에피소드나 마치 영웅담(?)으로 회자될 기억이 없습니다.
안에 있으면 도리어 안보입니다.
불알친구들사이는 '함께 묻혀가다 보니, 못보는 게 많습니다. 익숙함의 외피를 띠지만 실은 문제의식을 회피하기 쉽습니다.
자일을 서로 묶은 사이라는 말을 주고받을 땐 '알고보면 이해못할 것도 없다'라며 현실수용의 자세가 어려 있습니다.
철이 제대로 들기 전부터 서로 자일을 묶은 사이라는게 우리 산악계의 속성이라고 볼때,
그는 비록 대산연 회장직도 역임하고, 끊임없이 산악계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평생토록 주변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변인은 속성상 관행이나 관습을 추종하거나 구두선을 주억거리지 않습니다. 정실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주변인은 편승하지 않고, 눈을 감지 않습니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하면서 외부자적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항상 떼로 다닐 수 밖에 없는 초식동물들이 맛있다고 하루종일 풀을 뜯고 있는 사이에
홀로 어슬렁거리되 깨어있는 고독한 표범 이미지가 오버랩됩니다.
표범은 천하를 주유합니다. 하늘을 이불삼아 당당히 잡니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 가끔씩 그를 떠올리면서 과연 김영도 옹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를 생각해본적이 많습니다.
77에베레스트 원정대장?
대산연 회장을 역임한 산악계 중추어른?
저는 옹을 산악계의 주변인 또는 외부자로 보아야,
옹의 후반생과 그가 기여한 바에 대해 제대로 대접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윗글은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그 단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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