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노원 토박이의 회고...
택시를 타서 이야기 나누는 와중에
68년 서울 노원에 온 후 지금까지 쭈욱 사는 분이라 관심있게 그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래는 그 분의 회고담입니다.
북한산 도봉산에 관한 짧은 기억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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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68년 충청도에서 노원에 입성(초등학교 3학년 또는 4학년 -그분의 말씀을 살짝 잊어버림.)
68년(초등학교 3학년 10살 또는 11살)은 노원은 남양주(양주시?) 소속이었다. 남양주 별내면 상계리.
그러다가 성북구 소속 -> 도봉구 소속(*지금도 면허시험장 이름이 도봉 면허시험장인 연유) ->노원구
- 당시 노원은 말그대로 산골동네였슴. 산있고 들판있고 계곡 있고...(오늘날 노원구하고 다름.)
ㅁ 68년 김신조 사태 있었슴.
- 수락산 등에도 삐잉 둘러 군사용 철조망 쳐져 있어 출입통제. 수락산도 몇몇 루트 말고 전면 열린게 얼마 되지 않은 걸로 기억.
- 당시 도봉산에는 군사용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출입 통제되었슴.
- 물론 망월사 등 사찰까지는 갈 수 있었슴. 그러나 가보지 않음.
- 중랑천 건너 도봉산 북한산에는 안가봄. 가는 문화가 아니었슴.
중학교때도 고등학교때도 군대제대(80년 즈음)후에도 친구들끼리 간 기억 없음. 친구들도 가지 않았슴. 산에 가는 게 놀꺼리가 아니었슴.
- 요는. 자기들은 당시 촌놈이었는데도 어린 꼬마들 사이에 산에 가는 문화가 없었다는 사실 확인함.
ㅁ 채석장. 불암산 아래쪽에 채석장 흔적이 많은데(저는 일제시대때 라고 생각했는데.
70년대에도 쭈욱 발파 및 채석을 했다고 함
ㅁ. 삼양식품(라면) 공장은 지금으 도봉구청. 아피파크 아파트자리. 아마 90년대에 이전한 듯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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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당시는 전기불 없어서 석유램프. 초등학교 6학년 즈음에 불이 들어온 듯.
ㅁ 당시 노원은 논밭 -> 비닐하우스촌(양파 등등) -> 80년대 들어 아파트 촌 변신
ㅁ 처음엔 중랑천이 그나마 맑았던 걸로 기억. 곧 의정부시에 난립했던 염색공장(가죽공장) 때문에
중랑천이 악취와 짙은 색깔로 접근하기 어려웠슴.
ㅁ 중랑천은 홍수지면 범람했슴.
ㅁ 소풍은 주로 창경궁(당시는 창경원). 청량리 지나가는 버스는 1~2시간 소요.
다들 차를 안타본 학생들이라 멀미에 시달림.
ㅁ 동일로는 비포장 1차선 도로. 박정희씨 지나가는 길목에 태극기를 흔들기도
ㅁ 상계초등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말그대로 판자를 잇대어 만든 판자총.
공동 화장실도 얼기설기 판자로. 비가오거나 어쩌거나 아침마다 긴 행렬.
ㅁ 판자집은 이후 벽돌집으로 변모. 벽돌들은 오줌누면 패이기도 하고. 발길질에 푸욱 꺼지기도
(*요즘 간혹 들리는 중국 이야기가 별세상 이야기가 아님. 불과전 우리나라도) -> 아파트촌
ㅁ 성북역에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었슴. 의정부 갈려면 성북역에서 하차후 버스 탐.
기타 중계동 노인들의 기억 http://news.khan.co.kr/section ··· 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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