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 어디에 있는가? 그 한량들은.


호들갑스러운 언론 탓에 참 좋은 날인 듯 싶은 추석도
알고 보면 양파같습니다.
막상 까고 보면 '속'이라고 별게 없는.....

추석을 잘들 보내셨겠지요....~~~
클라이머들은 그 속성상 한량들하고 그리 멀지 않은 종족들입니다.
근사한 한량 마인드를 내내 잊지 않기를.....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어디에 있는가,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초원,숲속의 빈터,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밀란 쿤데라. 『느림』중에서.



글을 곱씹어 읽고 또 읽어보니.
역시, 고도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추석, 끝나니 좋다.
돌아와 굳이 읽지 않아도 조용히 책을 펴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해지네요.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같은 부분, 조금 더 긴 글을 인용합니다.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졌는가?

...나는 자동차를 몰고 있고, 백미러를 통해 내 뒤의 자동차를 관찰한다. 왼쪽의 작은 등이 깜박거리고 있으며 자동차 전체가 조바심의 전파를 보내고 있다. 저 운전수는 나를 추월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맹금이 참새를 노리듯이 그 순간을 노리고 있다.
아내, 베라가 내게 말한다. "50마다 한 사람씩 프랑스의 도로 위에서 죽어요. 저 사람들 보세요, 주위에서 차를 굴리고 있는 저 미친 사람들. 저들은 거리에서 어떤 할머니가 털리는 것을 보면 지극히 몸을 사리는 바로 그들이에요. 한데 어째서 운전석에 앉으면 두려움을 모르게 되는 걸까요?"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렇게.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 나와 있다. 그는 시간의 바깥에 있다. …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이다. 오토바이의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시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물집들,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 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소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 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 이 한가로움은 빈둥거림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빈둥거리는 자는, 낙심한 자요, 따분해하며, 자기에게 결여된 움직임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사람이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밀란 쿤데라의 느림과 관련하여 읽으봄직한 글들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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