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좌 끝장내기....노동의 소외이론으로 본
"처음에는 정말 즐거웠는데, 어느순간부터 점점 의무감과 부담감을 갖게 되고 나도 모르게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라는 선데이 서울 독자 체험수기가 사실 세상살이의 본모습이기도 하지만,
KBS까지 동원된 14좌 끝장내기. 14좌 밀어내기 버라이어티쇼를 보면서 문득 마르크스의 '소외'이론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소외이론의 '소'도 잘 몰라 아래의 요약본을 검색해서 모셔왔는데 서로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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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크스(K.Marx)의 소외 이론
-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네 가지 측면에서 소외를 경험한다.
①노동의 산물로부터의 소외
-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의 산물' 로부터 소외된다. 노동자들은 무엇을 만들고 이를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원시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해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들은 노동의 산문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이것이 자신들의 세계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그러나 산업 사회에 들어서면서 노동자들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즉, 노동이 목적이 되기보다는 물건 구입에 필요한 돈을 구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②노동 과정으로부터의 소외
- 노동자들은 '노동 과정' 으로부터 소외된다. 자신의 작업 과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은 누군가에 의해 속도, 유형, 시간, 도구, 기법들을 통제받게 된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상적 활동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노동의 의미도 줄어든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활동과 일의 경험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상실된 정체성은 여가나 가족 생활 등을 통해 보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얻어진 취미나 가족 생활은 노동 세계와 완전히 분리될 뿐이며, 노동 소외가 심화될수록 노동자들의 생활은 병들어 간다.
③창조성으로부터의 소외
- 노동자들의 '창의성 박탈' 에 있다.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독특한 점은 창조성에 있다. 자율적인 창조적 활동 능력은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핵심요소이다. 노동자들이 인간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할 때 그는 동물과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 소외된 노동은 창조적이지 못하며, 단지 물질적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④사회적 관꼐로부터의 소외
- 소외된 노동은 '사회적 고립' 을 야기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소외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며, 이들의 노동은 다른 사람들과의 노동과 긴밀하게 결합되었을 때만 의미를 지닌다. 노동이 소외되면 노동 주체들간의 사회적 관계 역시 파괴된다. 명령과 지시에 따른 고립된 작업 속에서 동료들간의 사회적 관계가 망가지고, 노동자들은 파편화된다. 노동 집단 내에서 인간적,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고 노동자들은 고립된 존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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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인간소외이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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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맨(M. Seeman)의 소외 이론
- 마르크스의 소외론을 주관적 소외론으로 발전시킨 멜빈 시맨(Melvin Seeman)은 노동자들의 소외 경험을 무력감, 무의미감, 무규범감, 고립감, 자기 소원감이라는 다섯 가지 측면들로 구분하였다.
(1) 무력감
- 무력감은 개인이 현대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즉, 세상은 권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므로 나같이 하찮은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느낌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관(觀)에서 기원하지만, 시맨은 개인의 사회 심리적 수준에서 무력감을 취급함으로써 마르크스의 견해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2) 무의미감
- 무의미감은 개인이 현재의 사회적 상황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진행마저 예측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즉, 세상이 너무나 복잡하여 나로서는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느낌이다. 자신의 믿을 만한 근거가 흔들리는 이러한 제2의 소외형태는 행위가 불러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해 만족할 만한 기대가 작으므로 결과적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하여 자신감을 상실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3) 무규범감
- 무규범감은 개인이 행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규범이 붕괴되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즉,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일상적인 규범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감정은 뒤르켐이 말한 아노미(anomie)에서 유래된 것이다. 본래의 의미로서의 아노미는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사회 규범이 힘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4) 고립감
- 가치상의 고립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적인 가치를 거부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즉, 대중 문화를 낯선 것으로 느끼거나 그것에 대해 반대하고 분노하는 느낌이다. 또한 사회적 고립은 개인이 집단으로부터 격리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혈연이나 지연 등 자연적 연대감이 상실될 때 나타난다.
(5) 자기 소원(self-estrangement)
- 자기 소원(疎遠)은 개인이 자기 자신을 타인으로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즐거워서가 아니라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 노동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자기 것이 아니라 마치 남의 것으로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소외는 에리히 프롬에 의해 표현되고 있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기가 아닌 이방인으로 느끼는 경험 양식' 을 소외라고 부른 것을 원용하고 있다.
3.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성격 유형론』
- 프롬이 파악하는 소외는 인간의 '자기 소외' 이다. 따라서, 자아를 완전히 상실한 정신 이상자는 '절대적으로 소외된 인격' 이라고 본다. 이러한 소외 현상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목격될 수 있는 현상으로서, 결코 현대 사회에만 특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소외 현상은 그 규모와 양상, 성격으로보아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전면적, 보편적, 심층적이다. 노동자는 고도로 분업화된 추상적 노동 기능의 수행자로 전락하였고, 기업가는 노동 관리, 기업 관리에서 비인간적인 관료주의에 얽매이며, 자본가는 오직 문서를 통해서만 자신의 재산에 관계하고, 생산과 소비는 인간의 실질적인 수요와 무관한 추상적 매커니즘에 지배되며, 조작된 생산은 조작된 수요를 만들고 조작된 수요는 금전, 이해, 상품 교환의 관계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자신의 인격도 인격 시장의 상품으로 조작, 선전, 판매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마르쿠제(Herbert Marcuse) : 일차원적 인간, 게오르그 『25시』
- 현대의 인간들은 낮에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온갖 문제에 접촉하게 된다. 그런데 저녁의 개인적 세계에서도 낮의 세계에서와 같은 동료 혹은 그 대용품으로서의 온갖 대중 문화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갱 영화에 의하여 상징되는 그러한 고독감에의 공포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대중 문화는 현실 생활의 대용품이 되어 준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대중 문화에 있어서는 그것은 단순한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타인 지향형 인간은 고독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는 군중 속으로 섞여 든다. 타인 지향형 인간은 자신에 대하여 온갖 의미에서 엄한 사람들이며 또한 그들은 소비자 훈련을 받는 아이들로서, 부모로서, 노동자로서, 또는 레저를 즐기는 인간으로서 매우 커다란 불안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타인 지향적 인간 = 현대인)
6.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 '나-너', '나-그것'
- 인간의 자기 소외나 인간성 상실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관계의 철학, 대화와 만남의 철학을 주장하는 부버는 이런 분열된 세계, 인간의 원자화를 인간들의 잘못된 관계에서 보고 이를 객체화할 수 있는 만남 (주체가 들어가 있는 만남) - 어린 왕자에 나오는 왕자와 여우의 대화 - 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성 상실과 인간 소외를 포함한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들도 따지고 보면 '나-너' 의 관계가 '나-그것-' 의 관꼐로 변질되고 있는데서 파생되었음을 파악하여, 그 바탕 위에서, 최근 들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환경 문제에까지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노동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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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노동과정
박 준 식(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I. 노동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이고 직업이 없는 사람들조차 성인이 되면 하루의 1/3 정도는 노동생활 속에서 지내게 된다. 노동이 한 인간에게 보람과 만족감을 줄 때 그 사람만큼 행복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노동이 끝없는 고통과 소외만을 불러일으킬 때 그 사람의 삶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노동은 인간에게 '구원'인 동시에 '저주'이다. 노동은 부와 만족감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빈곤과 소외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노동생활의 인간화와 민주화의 문제는 체제와 제도의 차이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인류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노동이란 무엇인가? 가장 넓은 의미의 노동이란 물질적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모든 행위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일의 의미를 조금 더 따져 가면 노동의 의미와 영역을 파악하는 것이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상적 통계 자료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특정한 고용 상태만을 일로 간주할 경우, 주부들의 가사노동, 혹은 실업 등은 무엇인가의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인식하는 일과 노동의 영역, 그리고 그 의미들은 대부분 한 사회 속에서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온 구성물의 성격이 강하다는 알 수 있다. 결국 어떠한 것이 노동인가의 문제는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맥락,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 대한 사람들의 정의에 달려 있다.
그 한 예가 '경제활동'과 '비경제활동'(economically inactive)간의 구분이다. 이 구분에 따르면 아무런 대가 없이 일하는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완전히 '비경제활동'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 구분은 서구적인 시장경제체제의 사회적 규정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노동은 보수가 없는 일로 간주되어 최근까지도 일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왔다. 가사노동은 엄밀한 의미의 집안일 뿐 아니라 쇼핑, 정원가꾸기, 물건고치기, 아기돌보기, 여가 등 다양하고 많은 영역들을 포함한다. 그런데 가사노동은 가정을 벗어나 공식적인 경제 영역에 들어오면 엄연히 보수가 주어지는 일, 그것도 남성들이 주로 담당하는 전문적인 일이 된다. 한마디로 가사노동의 영역과 공식적인 고용의 영역을 엄밀히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에 대한 기존의 사회학적 연구들은 '금전적 고용'을 주요한 측면으로 다루어 왔다. 어떤 개인이 아버지, 어머니로서보다는 '실업자'로 간주되는 상황은 근대 이후의 서구사회에서 국가에 의해 사회적 삶이 규정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금전적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 역시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의 성립을 전제로 가능한 역사적 구성물인 것이다. 수렵-채취사회에서의 원주민들은 최소한의 필요가 충족되면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수렵 및 채집사회에서 일의 동기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일하는 서구적 의미의 일과는 전혀 다르다. 이 사회에서의 일이란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과 더불어 그치는 것이며, 일과 여가는 구분되지 않는다.
오늘날 제3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시간을 최대한 증대시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그러나 제3세계의 '비공식부문'에서는 아직도 일과 일하지 않는 상태가 구분되지 않고 있다. 서구 산업국가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정된 직장을 갖고 있지만 제3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고정된 직장이나 수입원이 없다. 이것은 '시장'의 침투와 더불어 발생하는 '금전적 동기'가 사회조직에 얼마나 침투해 가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일과 노동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실제적인 활동 그 자체 보다는 그 활동을 구성하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듯이 보인다.
이 장의 목적은 일의 성격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 영역에서의 일과 노동문제를 다루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고 할 때 이 자본주의 사회체제 속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 이 장의 우선적 과제이다. 이 장에서는 우선 자본주의 사회체제 속에서 노동의 전 과정이 어떠한 흐름을 거쳐 순환되고 있는가를 본다. 다음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적 작업조직 속에서 노동분업과 노동과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는지를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한국의 산업화와 노동조직의 성격이 갖는 문제, 그리고 노동세계의 인간화와 민주화에 바탕을 둔 대안적 사회 시스템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노동계약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 노동문제의 영역을 중심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비교적 공식적인 노동계약과 노동문제의 영역을 중심으로 다루게 된다.
II. 자본주의적 노동계약과 노동문제의 영역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체제를 자본주의라 했을 때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노동문제는 자본주의적 노동계약의 두 핵심 주체인 자본과 임금노동의 출현과 더불어 발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제1부에서 임금노동의 문제를 다루면서 '자본주의 시대의 특징은 노동력이 노동자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그에게 속하는 하나의 상품으로서의 형태를 갖춘다는 것, 따라서 그의 노동이 임금의 형태를 취하는 데 있다'고 기술한다(Marx, 1967[1887]).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적 특징의 하나가 노동력의 상품화에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노동력의 상품화는 노동의 고용 목적이 자본주의적 이윤 동기에 의해 지배되는 제도적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스스로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판매하는 고용 계약에 참가하며, 고용주는 자본의 소유자로서 자본의 노동력을 활용하고 그 결과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때 노동자가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한다는 것은 그가 소유하는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이 신분적 종속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활의 방도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노동자의 인격과 하나로 결합되어 존재하던 노동력이 노동자로부터 분리되어 상품으로 팔리게 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노동력을 상품으로 자본에게 팔아 그 가격으로 얻은 임금으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유지하는 노동자의 사회적 존재형태가 곧 '임금노동'(wage labor)인데, 근대적 노동문제의 주된 관심은 바로 이 임금노동의 문제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의 등장은 곧 노동력이 하나의 상품으로 거래되는 노동의 형태를 띄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노동자들은 구매자와의 계약 조건에 따라 노동력을 지출하게 되며, 노동자들의 지출은 원칙상 '노동 그 자체'가 아닌 상품화된 '노동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노동'(labor)과 '노동력'(labor power)의 구분이라는 자본주의적 노동계약의 독특성이 드러난다.
그런데, 임금노동과 노동계약은 일반적 상품이나 상거래상의 계약과 구분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임금노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인격적, 도덕적, 감성적,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 있다. 노동자가 상품으로 내놓는 노동력, 혹은 노동 능력은 살아 있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은 이를 판 사람인 노동자의 인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자본주의적 노동계약은 일반적 상거래상의 계약관계와 비교할 때 훨씬 큰 '불확실성'(uncertainty)을 갖게 된다.
자본주의적 노동계약의 불확실성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그 근본은 자본이 구입한 상품으로서의 노동력과 인격으로서의 노동자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을 구입한 자본의 입장에서는 노동력으로부터 최대한의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여기에서 노동자가 자본가에 판매하는 것은 계약된 시간 동안의 노동력이다. 그러나 이 계약된 시간 동안의 노동량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는 양자간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주어진 시간에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노동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관리의 목표일 것이다. 반면, 노동자들은 지나친 착취에 저항하면서 노동력의 가치를 보존하거나 증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상황에서 노동과 자본 사이에는 '적당한 일의 양과 질'에 대한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불확실한 노동계약 상황에서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주체인 노동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구입한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활용함으로써 최대한의 이윤을 얻어내고자 할 것이다. 이 때 자본이 지향하는 노동 계약의 실질적 내용은 지시와 감독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명령에 따르는 노동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면 노동력의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인격적 존재인 노동자는 자본의 지시 하에 일하게 되지만, 노동의 궁극적 목적은 자본의 지배와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닌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실제 작업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현실은 이러한 기대와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노동자들은 노동의 과정 속에서 자본의 지시와 감독에 따라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자본의 지시에 따라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지만, 자신의 정신 및 육체적 능력의 결과는 자본의 처분에 따르게 된다. 자연히 노동의 소외 문제가 발생한다. 노동의 과정으로부터, 결과로부터, 창의성으로부터, 그리고 사회적 존재로서 노동자들 자신으로부터의 소외가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결국 노동력을 판매함으로써 임금을 취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것에 노동의 목적이 있다고 할 때 노동의 입장과 자본의 입장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과 '불확실성', 그리고 '갈등'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본은 노동과의 계약을 통해 임금을 지불하고, 그 대가로 노동력을 구입하여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를 시장을 통해 실현함으로써 새로운 이윤을 창출한다. 이 때 자본의 동기는 보다 많은 가치의 획득이 된다. 반면 임금노동자들은 노동과정에 투입되어 노동을 수행한 대가로 임금을 받으며, 이 임금을 통해 생활 수단을 취득하고 새로운 임금노동을 재생산하게 된다. 이 노동력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가 아닌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다. 자본과 임금노동간에 이루어지는 '교환 관계'(exchange relations)가 이러한 성격을 갖는다고 할 때 두 행위자들 간에는 자본과 임금노동의 재생산을 둘러싼 모든 영역에서 복잡한 협력과 갈등의 교환 관계가 만들어지게 되며, 이러한 교환관계 속에서 자본과 노동 누구에 의해서도 확실히 지배되지 못하는 타협과 갈등, 그리고 협력의 역동적 공간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다음의 그림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자본 = 화폐(G) -임금(W) ... 생산과정(P) ... 상품(W') -화폐(G')
Х ∥ Х
임금노동 = 노동(A) -(임금(G))... 노동과정(Ap) ... 임금(G) -상품(W') .노동(A)
+----------+ +------------+ +----------------+
노동시장 노동과정 소비과정
위의 그림에서 위쪽은 자본의 재생산을, 아래는 임금노동의 재생산 과정을 나타낸다. A(W)는 노동력 상품, Ap는 노동과정, (G)...Ap...G는 노동시장에서 노동 계약이 맺어지고, 노동과정을 거쳐 현실상의 임금 지불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W'는 노동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생산물을의미한다. 여기에서 자본과 노동을 연결하는 선들은 양자간에 상품 및 화폐의 이동관계 및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나타낸다. 이 흐름을 노동문제의 영역들 속에 대입시켜 보면, 노동시장, 노동과정, 소비의 기본 과정들이 나타난다. 이 그림에서 자본주의적 고용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노동문제는 노동시장, 노동과정, 소비과정의 전 흐름 속에서 존재한다(隅谷三喜男, 1991: 54-60). 우리는 이러한 문제 영역들 중에서 자본주의적 노동과정과 노동분업의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다.
III. 분업과 노동과정의 역사적 전개
(1) 고전적 분업론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의 역사적 전개와 발전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200여년간 산업사회를 지배해 온 사회적 분업의 기본 조직 원리를 기초했다고 볼 수 있는 아담 스미스의 분업론을 볼 필요가 있다. 아담스미스는 {국부론} 1장에서 분업을 통해 생산성의 엄청난 향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저 유명한 핀 제조공정의 예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약 18개의 독립된 작업으로 구성된 핀 제조작업을 10명의 노동자들이 분업을 통해 수행할 경우 10명이 하루 48,000개 이상의 핀을 만들 수 있고, 이는 한 사람이 하루 4,800개를 만드는 것에 해당하지만, 개별 노동자가 독립적으로 완성품을 만들 경우 어떤 노동자도 특수한 훈련을 받지 않는 이상 하루 20개조차 만들 수 없으며, 1개도 제대로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분업을 통한 놀라운 노동생산성 향상 효과를 논하였다. 작업 과정에 기계를 도입하지 않고서도 단지 특정 작업의 전문화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생산성 향상이야말로 분업이 만들어내는 마술이라는 것이다(Smith,1992).
아담스미스가 분업의 효과를 제시할 당시 산업화의 출발점에 서 있었던 영국에서는 공장제 수공업이 지배적인 노동분업 방식이었다. 메뉴펙쳐라 불리우는 수공업 생산에서 그가 제시한 분업의 원리는 모든 공장사회에 급속히 확산되어 갔으며, 산업사회의 지배적인 조직 원리가 되었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분업의 가치를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였다. 그는 분업은 효율성을 증대시키는데, 분업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교환성향'으로부터 출발하며, 분업의 필요성과 크기는 '시장의 크기'에 의해 규정된다고 보았다. 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면 시장의 확대는 생산의 확대를 불러일으키고, 생산의 확대는 효율적인 생산조직을 요구하게 되는데, 바로 이 효율적 생산조직을 위해 분업이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분업의 놀라운 생산성 향상 효과에 대해 논하면서 그 근거로 기교의 향상, 이동 비용의 절감, 그리고 기계화의 촉진 효과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생산성 향상 효과를 상쇄할 수 있는 분업의 모순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여기에서 스미스가 논한 분업의 세 가지 효과와, 이러한 효과가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인 문제들을 좀 더 자세히 보도록 하자.
아담 스미스가 첫 번째로 주목하는 효과는 분업에 의한 '기교'(dexterity)의 향상이었다. 이 때 기교란 폭넓고 깊은 '숙련'(skill)과 '지식'(knowledge)의 축적보다는 좁은 영역에서의 동일한 작업의 반복을 통해 얻어지는 '반복을 통한 숙달'의 의미가 더 강하였다. 여기에서 스미스가 '숙련'과 '기교'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분업을 통한 기교의 향상은 주목하지만, 분업이 숙련을 증대시킨다고 보지는 않는다. 즉 분업의 증대는 기교를 증대시킬 수 있지만, 숙련의 향상과는 무관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숙련의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할 때, 스미스는 이미 분업의 극대화가 숙련의 해체로 이어지면서 산업사회의 수많은 인간적 문제들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Box 1: '숙련'과 '숙달'의 차이>
숙련과 숙달은 본질적 차이가 있다. 숙련은 오랜 기간동안의 체계적이고 꾸준한 훈련을 통해 누적적으로 축적되며, 쉽게 모방하기 힘든 통합적인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요하는 반면 숙달은 짭은 시간에 이루어지고 한번 습득하면 더 이상 발전되지 않는다. 숙달곡선은 짧은 시간에 급커브를 그리는 반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상승하지 않는다. 숙련곡선은 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상승한다. 경영자는 생산 조직을 설계하거나 운영할 때 이 두 곡선들 중 어떠한 곡선을 중심으로 생산조직을 설계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숙달 곡선을 중시할 경우 단기간에 대규모의 생산 체제를 형성하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이 경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높은 숙련에 의존하는 고급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힘들다. 숙련 곡선을 중시할 경우 경영자는 노동자들의 숙련과 기술을 기반으로 축적되는 생산 체제를 형성하는 데 유리하지만, 이러한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는 상당한 기간의 축적된 경험과 행위자들간의 신뢰 관계가 공고하게 유지되어야만 한다.
두 번째로 스미스는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이동할 때 드는 이동비용의 감소를 주장한다. 분업은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동비용을 감소시킴으로써 생산성 증대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분명한 비용이 있다. 분업의 증대가 수반하는 가장 큰 비용은 수많은 분절화된 작업들간의 '통제'와 '조정'(coordination)에 수반되는 비용이다. 이 조정비용은 분업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분업은 일정한 수준까지 '이동비용'을 감소시키지만, 분업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가게 될 때 분업에 따른 '통제'와 '조정' 및 '관리' 비용을 증대시킴으로써 분업의 역효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럴 때 통제와 조정, 그리고 관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위계질서'(hierarchy)이다. 이 때문에 산업사회에서의 분업은 처음부터 위계 조직, 통제 및 관리 조직과 함께 발전했다(Marglin, 1974).
세 번째로 그는 분업의 증대가 생산의 기계화를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기계화의 증대가 코스트를 수반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순한 작업들의 기계화는 인간의 노동을 기계에 종속시킬 가능성과 생산과정에서 인간노동의 비인간화를 촉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분업의 규모와 정도는 어떻게 결정될까. 스미스는 분업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시장의 규모'라고 보았다. 즉 시장의 확대는 대량의 수요를 창출하고, 대량의 수요에 응하기 위해서는 '수공업'에 의존하던 생산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스미스는 시장의 확대와 변화가 분업의 확대를 요구하고, 시장의 변화에 의해 분업의 수준과 내용이 변화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와 같은 스미스의 주장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시장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노동분업 체제의 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된다. 스미스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사람들은 장인적 생산이 지배하던 전자본주의 사회에서 스미스적 분업의 논리가 지배적으로 관철되어 온 대량생산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시장의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크게 증가하고,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변화하는 상황에서 스미스적 분업의 논리를 역전시키는 '유연적 전문화'(flixible specialization)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Piore and Sabel, 1984).
분업의 효율성과 가치는 고전 사회학자들 역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케임은 '인류애의 이상은 분업의 발달정도에 비례해서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일반적으로 분업이 사회적 연대성을 발달시킬 수 있으며, 현대사회는 점차 '기계적 분업'으로부터 '유기적 분업'으로 전환되어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정상적인 분업만이 이러한 순기능을 갖고 있고, 전문화가 증가할수록 비정상적 분업 역시 도처에 나타날 수 있다고 보면서, 이를 '아노미'(anomie)적 상황으로 불렀다(Durkheim, 1984[1933]). 뒤르케임은 분업의 필연성과 사회적 기능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스미스의 이론을 수용하고 있다. 사회학자인 막스베버 역시 전문화된 사회적 분업의 증가가 합리성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분업이 초래하는 합리화된 세계의 문제점을 인정하지만, 그 극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Weber, 1946).
스미스의 분업론은 분업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들을 우리에게 제기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분업이 만들어내는 '효율성'과 산업사회의 인간적 가치들과의 충돌 가능성이다. 분업은 생산성과 효율성의 향상을 통해 더욱 값싼 제품을 대량으로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물질적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분업의 효과를 '기술적' 측면에서 볼 경우에만 가능하다. 분업에서는 기술적 차원과 더불어 '사회적'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기술적 분업이 이루어지는 인간 집단들간의 사회적 관계의 문제를 간과할 때 분업에 대한 논의는 기술적 예찬론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스미스는 이미 지나친 분업이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 그리고 노동자들의 정신적, 문화적 쇠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논의는 분업의 인간적 모순에 대한 경고를 넘어서지는 못하였다.
스미스의 분업론이 생산의 '기술적 분업'의 측면에 주된 초점을 두었다면, '사회적 분업'의 문제를 고민한 대표적인 사람은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는 '기술적 분업(technical division of labor)'과, '사회적 분업(social division of labor)'을 구분함으로써 분업에 대한 낙관적 인식의 근본적 한계를 넘어서 이를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파악하고자 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분업은 기술적 분업 이전에 자본과 노동간의 사회적 분업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분업체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술적 분업은 필연적으로 노동소외의 모순을 심화시킨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분업을 기술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결합으로 파악하고, 양자간의 상호작용을 봄으로써 자본주의적 분업의 근본 모순을 보고자 하였다. 즉,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생산력의 발전은 새로운 노동분업의 가능성을 열어주게 되는데, 이러한 분업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사회적 분업 체제의 틀 속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이 과정에서 끊임없는 모순과 갈등의 구도가 형성되며,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새로운 사회적 분업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것이 마르크스의 의도였다.
마르크스는 분업을 생산력 발전의 불가피한 필연적 과정으로만 이해하는 것에 반대하고, 노동소외에 기초한 분업을 강제하는 사용가치 중심의 사화구조와 생산관계의 문제를 강조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분업은 필연적으로 '노동소외'를 일으킨다고 본다. 그는 초기의 저작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가치가 축적될수록 노동자들의 가치는 도리어 감소한다고 주장하였다(Marx, 1959 [1844]). 자본주의 사회는 엄청난 생산성 뿐 아니라 가장 비참한 생활고와 노동조건을 동시에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활동과 노동의 산물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들의 처지를 '임금 노예'(wage slavery)로 보았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네 가지 측면에서 소외를 경험한다. 첫째,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의 산물'(Products of their labor)로부터 소외된다. 노동자들은 무엇을 만들고 이를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원시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해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들은 노동의 산물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이것이 자신들의 세계에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노동자들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즉, 노동이 목적이 되기보다는 물건들을 살 돈을 구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의 산물에 대한 관련성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에 노동의 산물을 노동의 표현과 확장으로 보다는 소외된 대상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둘째, 노동자들은 '노동 과정'(process of work)으로부터 소외된다. 자신의 작업 과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은 누군가에 의해 속도, 유형, 시간, 도구, 기법들을 통제받게 된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상적 활동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노동의 의미도 줄어든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활동과 일의 경험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상실된 정체성은 '여가'나 '가족 취미' 등을 통해 보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얻어진 취미나 가족생활은 노동세계와 완전히 분리될 뿐이며, 노동 소외가 심화될수록 노동자들의 생활은 병들어간다.
노동소외의 세 번째 측면은 노동자들의 '창의성 박탈'에 있다.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독특한 점은 창조성에 있다. 자율적인 창조적 활동 능력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핵심 요소이다. 노동자들이 인간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할 때 그는 동물과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 소외된 노동은 창조적이지 못하며, 단지 물질적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네 번째로 소외된 노동은 '사회적 고립'을 야기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소외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며, 이들의 노동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과 긴밀하게 결합되었을 때만 의미를 지닌다. 노동이 소외되면 노동 주체들간의 사회적 관계 역시 파괴된다. 명령과 지시에 따른 고립된 작업 속에서 동료들간의 사회적 관계가 망가지고, 노동자들은 파편화된다. 노동집단 내에서 인간적,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고 노동자들은 고립된 존재로 남는다.
마르크스의 소외론을 주관적 소외론으로 발전시킨 멜빈 씨멘(Melvin Seeman, 1959)은 노동자들의 소외 경험을 '무력감'(powerlessness), '자기소원감'(self-estrangement), '무의미성' (meaninglessness), '고립감'(isolation), 그리고 '무규범성'(normlessness)이라는 다섯가지 측면들로 구분하였다. 그의 소외론은 마르크스의 소외론과 유사한 내용을 갖고 있다. 무력감이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의미하며, 이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노동의 산물로부터의 소외와 상응한다. 자기소외감은 일의 보상 혹은 몰두할 수 있는 활동을 결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마르크스의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와 일치한다. 무의미성은 자신들의 노력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형성되는데, 이는 창조성 박탈과 상응한다. 다음으로 고립감은 노동의 목표, 가치의 상실, 그리고 자신과 사회로부터의 괴리감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타인으로부터의 소외감과 상응한다. 씨맨은 무규범성 개념을 뒤르케임으로부터 빌어 오는데, 이는 사회적 행동을 위한 가치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거나 이를 따를 이유가 충분치 않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 개념은 작업장을 넘어 더 광범위한 사회적 소외를 지칭하는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마르크스의 전체 사회로부터의 소외와 상응한다(Seeman, 1959).
소외는 노동자들을 작업 과정에서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가정, 공동체, 그리고 전체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노동과정과 생산물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은 더 넓은 의미의 사회의 운명도 통제할 수 없다. 작업 현장에서 시작된 노동 소외는 사회 전체로 파급되고, 급기야 노동자들은 설자리를 상실한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산업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의미 있는 사회 참여가 제거되어 버렸다고 본다. 마르크스가 소외론을 제기하던 1844년 무렵 노동 조건은 현재보다 훨씬 열악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인간적 작업 조건들은 아직도 널리 퍼져 있고, 심지어 가장 훌륭한 작업 조건을 제공하는 직장에서조차 소외는 지속되고 있다. 기계화와 자동화가 심화되고 조직의 관료화가 극단화되어진 오늘날 마르크스의 소외론은 더욱 절실한 메시지들을 던져주고 있는지 모른다.
(2) 현대 분업론
스미스의 분업론을 현대 기업의 노동조직 속에 구현하고자 했던 본격적인 시도는 20세기 초 미국의 기계기사 테일러(F. W. Taylor)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테일러의 조직이론은 '과학적 관리의 원리'(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로 불리우면서 대량생산 시대의 급류를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가 근대적 산업조직의 작업장 조직원리로 자리잡게 된다(Taylor, 1988[1911]). 아담스미스가 분업의 효율성에 대한 이론을 최초로 체계화시켰다면, 이를 구체적인 산업 현장에 적용하여 실천에 옮긴 사람이 테일러였던 것이다. 그의 과학적 관리론은 근대적 산업조직에서 일반화된 대량생산 위주의 생산방식과 결합되어 현대 자본주의 분업론의 핵심이 되는 관리의 중심 철학과 실천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21세기의 목전에서도 테일러주의에 입각한 작업조직과 생산의 분업체제는 자본주의 국가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배적인 분업의 원리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으며, 포디즘을 넘어섰다고 주장하는 선진국의 대안적 작업장 조직들 속에서도 테일러가 제시한 과학적 관리의 사고는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론은 '노사의 공동번영은 상호의 진정한 협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대원칙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테일러는 생산 부분의 작업현장에는 노사의 진정한 협력을 가로막는 '태만'(solidering)과 비능률적 작업 관행이 만연해 있다고 본다. 테일러는 태만에는 '자연발생적, 본능적 태만'과 '조직적 태만'이 존재하는데, 조직의 비능률을 만들어내는 만들어내는 가장 큰 적은 노동자들의 '조직적 태만'(organized solidering)에 있다고 보았다. 조직적 태만은 노동자들의 의도적인 '생산량 조절'에 의해 나타나는데, 테일러는 이러한 행위의 배경에는 '노동의 능률을 올리면 이것이 자신들의 실직을 유발한다는 노동자들의 두려움', '노동자들의 작업에 대한 막연한 관찰에 근거한 사용자의 불완전한 작업량 결정',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일의 방법을 일임하는 비능률적인 주먹구구식 관리법'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주먹구구식 관리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관찰에 의거하여 과거 노동자들간의 '구전'(口傳)과 '정진'(精進)에 의해 관습적으로 전달되어 온 노동과정의 지식을 관리의 영역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이리하여 노동자들의 지식과 노동의 과정을 과학적 관찰을 통해 체계적으로 문서화 시키고, 어느 상황에도 적용 가능한 가장 효과적인 작업 방법들로 표준화 하며, 이를 선발된 노동자들에게 훈련을 통해 주입함으로써 과학에 의존하는 새로운 작업 조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테일러가 의미하는 과학은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하고, 일반화시킬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의미한다. 그는 과학적 관찰을 통해 모든 작업의 가장 효율적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의 신념은 과학에 대한 '맹신'의 결과였다.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시간 동작 연구'(time and motion study) 기법을 제안하였고, 노동자들의 작업, 동작, 행동, 도구, 공구 등을 이 연구에 기반하여 표준화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초시계'(stop watch)는 이러한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적절한 도구가 되었다. 테일러는 이렇게 하여 체계적으로 수집된 노동과정에 대한 지식을 '작업지시서'의 형태로 문서화하여 관리자들이 이를 독점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두뇌노동'이 요구되는 않는 상태를 만들고자 하였다. 작업의 순서도, 공정도, 표준동작 및 작업 기준들이 관리자들에 의해 구축되고, 관리에 순응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차등적 성과급이 지급되었던 것이다.
그는 과학적 관리의 원리를 실행하는 사용자들의 요구에 맞는 노동자들의 선발과 훈련을 강조했고, 감독자의 지시와 관리에 순종하는 노동자들을 이상형으로 보았다. 테일러는 이러한 노동자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충분한 협력의 동기가 요구된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동기 체계의 구축을 위해 관리자들의 지시에 의해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기존의 임금보다 30-100%가 증가한 임금을 지불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과학적 관리를 통한 생산성의 향상은 결과적으로 자본과 노동 모두에 대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테일러의 중요성은 그의 이론 그 자체보다는 그가 누구보다 자신의 이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테일러는 베들레헴 제철소의 선철 운반 노동자들, 자전거 볼 베어링 공장, 기계 절삭가공 공장 등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과학적 관리론을 실행에 옮기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도들은 매번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였다. 제철소의 벽돌공 노조는 공공사업장에서 1일 작업량 275개, 개인소유주 작업에서는 375개 이상 벽돌쌓기를 금지하면서 테일러의 능률 올리기에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파업을 감행하였고, 베어링볼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고 하루 10시간의 일을 하되 자신의 작업 지시량을 따르도록 요구하였으나 노동자들은 이를 부결시켰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테일러식 작업조직의 원리는 관리의 기본 원리와 철학으로 급속히 확산되어갔다.
테일러주의의 확산을 결정적으로 촉진시킨 것은 이러한 관리의 철학을 기술적으로 가능케 한 '포디즘'(Fordism)이라는 생산체제의 출현이었다. 포디즘적 생산 체제의 핵심은 테일러식 노동분업의 원리를 이른바 컨베이어 벨트라는 기계적 생산 시스템과 결합시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의존하는 근대적 생산체제를 구축한 데 있다. 이 체제를 실제로 구현한 헨리 포드는 자동차 산업에서 컨베이어라는 이동식 조립 생산 방식을 도입하여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고안하였고, 이 생산 라인의 흐름 속에 단기간의 훈련만을 요구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에 익숙한 대량의 반숙련 및 미숙련 노동자를 결합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이러한 체제 속에 철저히 통제되고 규율잡힌 노동력을 동원하고자 하였고, 경영의 지시와 감독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요구되지 않는 노동자들을 생산체제 속에 조직함으로써 대량생산의 시대를 개척하려 했던 것이다(Beynon, 1973). 테일러에 의해 그 기본 원리가 만들어지고 포드에 의해 완성된 테일러-포디즘은 작업장에서의 전통적이고 위계적인 권력 구조, 노동의 구상과 실행의 분리, 낮은 기술수준을 지닌 노동력의 대량 투입, 그리고 단순반복적 일상작업을 산업세계의 작업 현장에 제도화시킴으로써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의존하는 생산 체제의 기틀을 구축하였다.
테일러식 과학적 관리론을 수용하고 확산시킨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였다. 20세기 초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새로운 경제 질서에 요구되는 생산성의 증대를 국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했던 레닌(Lenin V. I.)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생산성의 문제에 주목했으며, 이 때 테일러주의를 사회주의적 생산과정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레닌은 대공업의 물적 기초를 다지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자의 규율 향상, 노동기능과 강도, 효율, 숙련, 노동조직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보고, 능력급제와 보상제도의 도입 필요성도 제시하였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존중해야 할 하나의 체계로 과학적이고 진보된 테일러 시스템을 적극 도입할 것을 강조하였다. 당시의 상황에서 여타의 역사적, 기술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테일러주의에 대한 레닌의 인식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사회주의 작업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관료 중심의 작업장 통제의 고착화로 나타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작업장 조직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명령과 위계 중심의 체제로 나아갔다. 노동의 인간화와 참여를 통한 진정한 노동해방의 이상은 테일러에 대한 레닌의 찬양 앞에서 허물어졌다.
테일러주의와 결합한 포디즘은 20세기의 초반에 이미 세계적인 현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테일러-포디즘의 확산을 주목한 대표적인 사람은 이탈리아의 사회과학자인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였다. 그는 [미국주외와 포디즘](Americanism and Fordism) 이라는 논문에서 포디즘를 단순히 생산방식의 측면에서 본 것이 아니라 가치관, 관습, 습속, 일상생활 같은 문화적 측면과 함께 생활양식, 혹은 문화적 현상으로 파악하는 독창성을 보여주었다(Gramsci, 1971). 그람시는 포디즘을 전례 없는 속도와 목적의식을 갖고 새로운 노동자와 인간을 창출하고 있는 거대한 물결로 파악한다. 포디즘은 노동자들 속에 자동적이고 기계적인 태도를 최대한 조장하고, 노동자들의 지성, 상상력, 창의력 등의 참여를 요구하는 과거의 심리, 신체적 연관을 파괴하여 생산적 활동을 기계적이고 신체적인 측면으로 환원시킨다는 것이다. 고임금, 주류 판매 금지, 성적 타락의 금지 등 헨리 포드가 작업장에서의 규율 확립을 지원하기 위해 구상한 사회적 통제의 게제들은 노동자들의 근육 뿐 아니라 이들의 신경 자체를 규정하려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람시는 포디즘의 효율성과 생산성 뿐 아니라 그 속에 내재한 생활양식적 측면의 변화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는 포디즘이 이탈리아에 도입되며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탈리아 사회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정치적 맥락과의 연관 속에서 다루고 있다. 그람시는 포디즘를 역사적 진보의 측면에서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특수한 사회환경, 특히 국가의 정책이나 인구의 문제, 성의 문제, 주류판매의 문제 등 해당 사회의 구체적 조건들과의 결합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전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포디즘을 역사의 또 다른 단계로의 이행을 예고하는 신호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 포디즘의 도입이 여러 측면에서 왜곡을 겪고 있음을 지적한다. 후진적 금리생활 계층의 잔존, 농촌의 전자본주의적 요소들, 전근대적 습속 등의 요소들이 포디즘적 요소의 도입을 저해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에 도입된 포디즘은 왜곡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그람시는 당시 소비에트 사회에서 진행되는 생산의 합리화와 증대계획이 자칫 '노동의 군사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보고, 포디즘을 소비에트에 적용하는 문제는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그것을 받아들일 조건이 성숙했는지, 왜곡의 여지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을 주장한다.
테일러주의는 미국을 중심으로 그 원형이 만들어졌고, 산업사회의 주요한 조직 원리로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작 유럽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테일러주의는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였다. 특히 숙련의 전통과 노동조합의 힘이 강했던 독일이나 유럽의 노동 현장에서는 테일러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매우 강하였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들 사회의 작업 현장에서 테일러주의는 작업 현장에 파고들기 힘들었다. 정작 테일러주의가 가장 폭넓고 강하게 영향을 미친 곳은 선진자본주의 국가 보다는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화 국가들이나 제3세계의 산업화 지역이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전통적 숙련노동의 기반이 약하였을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영향 역시 미약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테일러주의는 급속한 압축적 공업화에 요구되는 미숙련 노동력을 작업 현장에 대규모로 투입하고, 대량생산 위주의 일반화된 기술을 적용하여 값싼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데 가장 적합한 작업조직의 논리였다. 테일러주의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제3세계의 작업 현장에 급속히 퍼져나갔고, 이들 국가들의 작업 현장에서는 숙련노동의 전통이 없이 단순반복적 작업조직이 일상적으로 제도화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에서 테일러주의는 압축적 후발산업화를 지향해 온 후발산업화 국가들, 그리고 저임금에 의존하는 제3세계의 산업화 지역들에서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테일러주의적 분업과 이에 기초해 조직화된 현대자본주의의 노동조직이 안고 있는 본질적 모순을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은 미국의 사회학자의 헤리 브레이버맨(Harry Braverman)이다. 그는 자본축적과 분업의 발전에 따라, 작업 현장에서 노동의 '구상'(conception)과 '실행'(execution)이 분리되고, 그 결과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가 일어나며, 노동의 세분화가 가속화 되고, 노동자들의 일에 대한 '통제력'과 '기능'이 상실되고 '자율성'이 제거되면서 노동자는 경영에 의해 통제되는 상품으로서 '탈숙련화'(deskilling)를 통한
'노동의 쇠퇴'(degradation of work)에 직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노동의 쇠퇴가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얻기 위한 자본의 동기에 의해 발생한다고 본다(Braverman, 1974). 브레이버맨에 따르면 테일러주의적 관리는 관리자들에 의해 노동자의 지식이 수집되고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과정 곧 '노동자의 기능으로부터 노동과정의 분리'와, '노동의 구상(conception)과 실행(execution) 기능의 분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리자들에 위한 노동과정에 대한 지식의 독점'을 그 근본 원리로 내재화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노동의 쇠퇴'를 야기하고 소외를 심화시킨다고 보았던 것이다.
브레이버맨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노동자들에게서 어떻게 구상과 실행의 기능과 숙련이 박탈되어 가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자본주의적 합리화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적극적 대응과 저항을 시도하는 주체적 존재로서 파악하지 못했던 점은 한계로 남는다(Burawoy, 1985). 브레이버맨의 한계는 생산의 현장을 포함하여 노동의 생산과 재생산의 모든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자본과 노동의 갈등과 협력,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교환 과정에 대한 이후의 분석적 연구들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극복되고 있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의 노동조직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테일러주의적 작업조직 원리는 낮은 가격의 표준화된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대량생산 체제에 적합한 것일 뿐 보다 높은 수준의 품질 지향적 생산 시스템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대량생산과 테일러-포디즘에 대한 대안적 노동조직 모델로 참여와 인간화에 기초한 민주적 생산 모델의 가능성들을 모색해 오고 있다(이영희, 1994).
(3) 테일러주의의 극복과 대안의 필요성
한때 테일러-포디즘은 산업사회의 보편적 조직 원리인 것처럼 인식되었었다. 그러나 이 체제는 표준화된 제품의 대량생산에 의존하는 조립 및 가공 산업을 중심으로 일반화되면서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테일러주의는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신체와 동작을 완벽히 해부하고, 더 나아가서 그들의 정신까지 분석함으로써 일체의 불필요와 낭비를 제거한 '완전한 소비'를 도모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신체는 분석할 수 없을 정도까지 미세하게 분할되고, 낱낱이 파헤쳐진 다음 관리자들에 의해 최적의 상태로 재조직 되어야 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렇게 재조직된 동작들을 위계적 경영의 관리 지침에 따라 내면화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와 동작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관찰을 통해 완벽하게 합리화되고, 경제적인 작업조직을 구현하려 했던 테일러주의의 이상은 점차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였다. 테일러주의에 대한 저항은 이것이 구현하려 했던 완벽한 합리화의 이상이 산업 과정에서의 인간적 요소에 대한 적절한 고려 없이 진행될 경우 도리어 많은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관계론'자들의 비판을 필두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이러한 이론들은 테일러주의의 적실성, 그러나 테일러주의를 서서히 무너트린 것은 이론적 실험보다는 현실의 상황이었다. 인간의 시간과 동작에 대한 가장 완벽한 통제를 통해 집요하게 산업적 규율의 내면화를 지향해 온 테일러주의적 관리와 통제의 기제들은 이를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저항에 직면하였던 것이다.
테일러주의가 한창 위세를 떨치며 확산되어가던 30년대에도 미국에서는 이미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컸지만, 이러한 저항은 전후 사상 유례없는 장기간의 호황과 경제적 안정의 구도속에서 덮어져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서구사회에서 테일러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광범위한 형태로 확산되어갔다. 노동자들은 작업감독 중심의 통제된 상황을 더 이상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직적인 저항을 전개해 나아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테일러주의가 지향해 오던 합리성 역시 근본적 한계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테일러주의가 노동의 인간화에 역행한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하였을 뿐 아니라, 생산의 합리성이라는 기준에서 보았을 때에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구조적 비용들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심각한 노동소외의 문제와 더불어 테일러주의가 안고 있는 보다 근본적 문제는 이것이 본질적으로 '저신뢰 시스템'(low-trust system)에 기초한 산업사회의 조직원리라는 데 있다. 테일러-포디즘은 인간의 노동을 기계의 리듬에 종속시키고, 일의 내용을 파편화시킬 뿐 아니라, 작업자들에 대한 감시와 행동 및 자율성의 제한을 요구한다. 노동자들의 모든 동작과 시간은 완벽하게 감시되고 관찰되며, 이들에 대한 교정과 규율화가 강제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불만과 소외감을 증대하고, 일상화된 갈등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작업장에서의 장기적 생산성 역시 저하되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는 저신뢰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대안을 모색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져 왔다. '고신뢰 시스템'(high-trust system)의 모색으로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시도들은 작업현장의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더 많은 참여, 일의 자율성 확대, 집단적 팀작업, 유연한 자동화 시스템, 핵심 노동력의 숙련 향상 등을 도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생산 방식의 변화는 일반화된 제품의 경직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중심의 사회 시스템이 붕괴하고, 소비 시장의 다변화와 틈새화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더욱 촉진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생산 과정에서 시장의 수요 변화에 따라 수시로 프로그램을 변화시킬 수 있는 컴퓨터 지원 생산 시스템의 등장도 생산 과정에서의 '유연성'(flexibility)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테일러-포디즘에 기반한 저신뢰 시스템의 시대적 적합성은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 컴퓨터의 지원을 받는 유연한 기술, 높은 수준의 기능과 지식을 지닌 노동력,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세분화되는 품질 중심의 시장 경쟁, 그리고 전세계적 규모로 전개되는 생산과 소비의 복잡한 분업구조와 네트워크화는 고신뢰에 기반한 유연한 생산 조직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산조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참여 확대, 그리고 노동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시키는 고신뢰 시스템이 요구되고 있다.
IV. 한국의 산업화, 테일러주의의 제도화
현대의 테일러주의는 과거의 원형에 비해 많은 변형 과정을 겪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대 산업사회의 대안적 조직 원리를 모색해 온 사람들은 테일러주의의 극복 필요성과 그 현실적 가능성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모색해 왔다. 그러나 수많은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테일러주의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면서 오늘날의 현대 산업 및 노동조직 속에서 그 원리를 의연히 유지하고 있다. 현대의 테일러주의는 특히 한국처럼 독자적인 기술과 숙련의 축적 없이 후발산업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후발공업화 국가들'의 작업 현장에서 두드러지게 강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테일러주의적 작업조직의 제도화와 이로 인해 야기되는 노동의 비인간화 문제는 한국의 작업 현장에서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지난 30여년간 한국 기업들이 의존해 온 자본 축적 전략의 요체는 저가제품을 대량생산함으로써 낮은 원가를 실현하여 국제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대량생산을 위한 단순작업의 반복노동 체계가 요구되었고, 이에 적합한 최적의 조직모델은 단순작업의 반복노동에 숙달된 노동력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였다. 이와 같은 생산체제는 주어진 명령과 직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미숙련 및 반숙련 노동자들을 아주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만들어낼 것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단기간의 짧은 교육을 통해 노동자들을 훈련시킴으로써 생산성이 높은 젊은 노동자들을 별다른 교육훈련이 없이도 대량생산 공정에 투입하는 인력양성 체제의 성립을 의미하였으며, 한국 기업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생산적인 저임금 노동력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박준식, 1996).
한국기업의 대량생산 체제에서 노동자들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체계적이고 수준높은 '숙련'이 아니라 단순반복적이고 제한된 직무를 명령에 따라 더 빠르게 수행만 하는 '숙달'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한국모델은 가난한 나라들도 짧은 시간에 요구되는 작업에 숙달된 저임금 노동력의 양성을 통해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순식간에 줄이면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이후 이러한 한국기업의 모델은 저개발 국가들이 선진국 기업들과 대등한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훈련제도'와 '조직모델'로 간주되어 동남아나 중국 등에서 또 다른 연쇄적 모방효과를 낳았다(Amsden, 1989).
<그림 > 한국기업의 경쟁 및 생산전략, 작업조직 조직관리간의 관계
+--------+ +--------+ +--------+ +--------+
|경쟁전략| |생산전략| |작업조직| |조직관리|
+--------+ +--------+ +--------+ +--------+
|가격경쟁|⇒ |저가제품|⇒ |단순작업|⇒ |권위주의|
|원가우위| |대량생산| |반복노동| |단순통제|
+--------+ +--------+ +--------+ +--------+
이리하여 한국의 작업 현장에서는 급속한 후발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테일러식 노동조직과 대량생산 체제의 위계적 관리 시스템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갔다. 테일러주의는 급속한 산업화에 요구되는 대규모 노동력을 단기간의 간단한 교육훈련을 통해 투입하는 것을 가능케 한 유일한 체제였으며, 그 점에서 급속한 산업화에 요구되는 노동력의 대량 공급에 가장 적절한 노동조직 원리였던 것이다. 테일러식 노동조직은 단기간에 대규모의 노동력을 동원하는 데 어떤 시스템보다 탁월한 적응력을 보여주었으며, 노동자들에게는 단기간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짧은 시간에 산업 생산에 요구되는 기교의 습득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테일러주의는 오랜 기간의 훈련과 경험의 축적 없이도 대규모 교육훈련 시스템을 통해 표준화된 기교를 미숙련 노동자들에게 단기간에 주입하는 교육 시스템과 연결되었다. 테일러주의적 노동교육 훈련체계는 단기간에 대규모 노동력의 동원과 투입을 통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는 방안이었던 것이다. 테일러식 노동조직의 도입을 통해 대규모 노동력의 교육 훈련이 단기간에 가능해짐에 따라 한국과 같은 후발공업화 국가들은 노동력의 용이한 동원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각종 공공 및 민간의 교육훈련 제도, 기업의 노동력 훈련 방식 등이 이 테일러식 원리에 기초하여 만들어졌고, 이들 기관들을 통해 산업 노동력의 대량 공급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테일러주의는 대량생산과 가격경쟁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의 작업 현장에서 급속한 산업화의 기간 동안 한국의 경영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왔고, 이러한 작업 현장에서의 노동력 수요에 부응하기 의해 노동력의 공급 기관인 대학, 중고등학고, 공고, 직업교육기관 등의 교육 시스템 속에 테일러주의적 원리가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산업 조직의 관행들, 기계의 배치와 편성, 그리고 노동력에 대한 관리 방식과 교육훈련 등에서 한국식 테일러주의는 강하게 고착되어 갔다. 이와 같은 테일러주의는 한국과 같은 후반자본주의 국가에서 단기간에 걸쳐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놀라울 정도까지 향상시키는 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한국에서는 테일러주의의 역기능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으며, 더 이상 우리의 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작업조직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두 가지 선택지에 직면해 있다. 첫 번째 길은 작업조직과 노사관계의 개혁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참여와 헌신, 이해당사자들의 협력을 통해 참여적이고 인간적이며 생산적인 노동 체제로의 길로 전환하는 것이다(김형기, 1992). 두 번째는 현재의 권위주의적, 대립적 노사관계 제도를 유지하고, 가격경쟁에 기초한 대량생산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선택한 길은 노동억압-대량생산-가격경쟁의 길이었다. 이 체제는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성공이 현재의 시점에서는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식 자본주의 체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뿌리박힌 작업조직과 노사관계 시스템은 테일러-포디즘적 대량생산 방식과 연결된 권위주의적, 대립적 노사관계의 모순을 그대로 안고 있다. 이 제도적 메커니즘은 기업의 자본축적 전략, 인센티브 체계, 그리고 노동자들의 작업수행 기제 등과 높은 기능적 친화력을 갖고 정착되어 있다(김태기, 1992). 급속한 후발 산업화의 기간 동안 한국 기업의 생산체제는 테일러-포디즘의 특성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의 도입을 작업통제의 측면에서 지지한 것이 병영적, 권위주의적 노동통제였던 것이다.
87년의 노동자대투쟁은 이 통제구조를 부분적으로 와해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가 생산체제와 노사관계 제도의 근본 변화를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권위주의적 노동통제가 부분적으로 해체되고, 기업별 교섭을 중심으로 한 단체교섭이 사업장 수준에서 제도화 되어갔지만, 이 단체교섭의 폭은 극도로 제한되고 말았다. 임금과 근로조건에 국한된 단체교섭 제도와, 이 제도 속에서 각자의 경제적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행위자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사업장 수준의 대립적 노사관계'를 만들어 내게 되었고, 대량생산에 기초한 테일러-포디즘적 작업체계는 도리어 안정화되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한국 기업의 노사관계 제도는 테일러-포디즘에 기초한 생산시스템에 권위주의적 노동통제가 결합됨으로써 그 원형이 형성되었고, 이 조직모델은 산업화의 초기단계에서 일정한 틀을 형성한 이후 몇 차례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고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직모델은 인간화, 민주화의 실현 뿐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에서 높은 기술과 생산성 향상에 기초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생산시스템과 노사관계 제도는 생산과정에서 인간의 창의성과 존엄성을 경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직모델에서 인간은 언제라도 교체 가능한 기계의 부품, 말 못하는 통제의 대상, 미숙하고 적응 못하는 존재일 뿐이며,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시와 통제, 위로부터의 지시에 따른 단순작업의 반복노동일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을 주도하는 경영자, 관료, 그리고 지배집단은 이러한 체제의 유지를 계속 고집하고 있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원가를 절감해야 하고,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가격을 싸게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권위적 노사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참여가 억제되어야 하고, 기업의 신성 불가침한 '경영권'이 절대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바로 이러한 발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산시스템과 노사관계가 구조화될 경우 우리에게 제시되는 모델은 민주적이며 인간적인 작업현장이 아니라 권위적이며 비인간적인 노동세계일 뿐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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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주제>
- 분업의 증대는 단기적으로 노동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분업이 세분화될수록 노동소외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소외를 극복하면서도 높은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의 기업들은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은 노동 조건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인간화된 작업 현장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높은 생산성을 올리는 것과 양립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자본주의적 경쟁은 노동 착취를 필연화시키는 것인가?
-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면, 기업들은 추가적 고용 보다는 자동화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 노동조건의 개선이 장기적으로 자동화로 인한 실업을 야기할 가능성은 없는가? 노동조건의 개선과 고용의 안정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 한국의 경제 관료들과 경영자들은 노동 측면에서의 '고비용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기업의 경영 환경 변화에 따라 고용의 규모를 신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정리해고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리해고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기본학습문헌>
산업사회에서의 노동문제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아담스미스의 분업론에 대한 이론이 담긴 {국부론} 1권 1장의 [분업론] 부분과,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에 소개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의 문제에 대한 분석이다. 근대적 노동문제의 본질과 내용에 대해 관심을 갖는 독자들은 일단 아담스미스와 마르크스의 분업론, 노동과정론, 임노동에 대한 분석에 접해보는 것이 좋다.
테일러(신형철 편역). 1988. {과학적 관리론}, 서울: 한국능률협회. 이 책은 테일러주의로 불리우는 산업사회의 조직 원리를 잘 소개해주고 있다. 독자들은 이 이론의 주창자였던 테일러의 주장들을 보면서 산업사회의 기본적 조직 원리와 모순들을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브레이버맨(이한주, 강남훈 옮김). 1987. {노동과 독점자본}, 서울: 까치. 이 책은 테일러주의의 확산과 함께 독점자본주의 시대에 전개되는 노동과정에서의 노동소외 문제를 '탈숙련화'의 문제를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노동분업과 노동과정, 그리고 노동의 비인간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필독서 중의 하나이다.
강수돌. 1997. {경영과 노동}, 서울: 한울. 이 책은 자본주의적 경영과 노동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반하면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영과 노동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함과 더불어 노동인간화와 진보적 생태주의의 시각에서 진지한 대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의 문제와 그 대안에 대해 관심을 갖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박준식. 1996. {생산의 정치와 작업장 민주주의}, 서울: 한울. 이 책은 한국의 작업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산 과정에서의 노동문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 작업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노동과 경영의 갈등과 협력의 문제, 그리고 선진자본주의 국가 등에서 최근에 전개되는 새로운 작업장 노사관계의 흐름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영희. 1994. {포디즘와 포드트포드주의}, 서울: 한울. 이 책은 한국의 현대자동차, 일본의 도요다자동차, 그리고 스웨덴의 볼보자동차 회사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하는 노사관계와 작업 현장 모델들의 역동적 관계를 조망하고, 바람직한 노사관계와 작업조직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심화학습 문헌>
위에 소개한 글들 이외에 보다 심화된 논의들에 접하고자 하는 독자들은 다음의 단행본들에 접해 보기를 권한다.
강석재.이호창 편역. 1993. {생산혁신과 노동의 변화}, 서울: 샛길.
김동춘. 1995. {한국사회 노동자 연구}, 서울: 역사비평사.
김형기. 1988. {한국의 독점자본과 임노동}, 서울: 까치.
송호근. 1990. {노동과 불평등}, 서울: 나남.
임영일 외. 1994. {산별노조론}, 서울: 미래사.
임혁백. 1994. {시장, 국가, 민주주의: 산업민주화와 정치경제이론}, 서울: 나남.
조우현. 1992. {한국 노사관계 개혁론}, 서울: 창작과 비평.
<Key Word>
과학적 관리
노동과정
노동소외
노동통제
분업
숙련
임금노동
탈숙련화
테일러주의
포디즘
[출처] 노동과 노동과정 | 노동조합 |작성자 제3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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