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내원암을 둘러보고 넓직학 터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그 맛, 봄눈 오는 날, 아무도 없는 산에서 먹는 라면, 묘한 멋이다.
그런다음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막 내려오면서 신승모씨가 생각난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그는 한때 원정대장을 맡는 등 전위적이면서도 학구적인 클라미어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국 산악회에서 편집위원회 위원장도 하였다가 도미,지금은 미국에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물론 산에 관한 책도 한국어, 영어로 두어권 썼다. "산악계의 백과사전"이라 불렸다나.
역삼동에 있는 산악도서관에 가서 보아도 그가 기증한 국내외 책들이 참 많이 있었고, 그 중에 어느 일본책-등산장비에 관한-을 펼쳐 보았더니, 책에 나와 있는 도해따라 마분지로 하켄을 직접 만들어 보았던 샘플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가로세로두께 등등 실측을 해가면서 말이다. 그 정보도 장비도 열악했던 시절의 열정.
그러나 오늘 내가 말하고픈 이야기는 이런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일화다. 이 일화는 그에 관한 잡지기사를 보면 양념에 감초처럼 적혀있어서 일화가 아니라 그시절을 증명하는 전설(?)쯤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무슨 일화인가?
그를 알고 있는 산악인들은 신씨가 돈 주고 장비 사는 걸 못 봤다고 입을 모았다. 한마디로 그의 장비 욕심은 ‘줍거나 얻거나 혹은 만들거나.’
바위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남이 떨어뜨린 장비를 줍거나,
바위에 장비가 걸려있으면 후다닥 올라가 회수하였다...
나도 이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참 재미있는 일화다 라고 치부하였었는데,
이날 내원암에서 내려오면서 이 일화가 참 쓸쓸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이(59세)를 보면 60년대 후반에서부터 산에서 활동했을 터이다. 그시절은 그야말로
장비가 빈약했던 시절이다. 산악회 전체로 보아 하켄 몇개, 카라비너 몇개 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마누라는 빌려줘도 장비는 절대 안돼."
장비가 귀했던 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산악인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떠돌던 장비에 관한 속설이다. 여자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등산 장비가 산악인에게 얼마나 애지중지한 존재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라비너를 줍거나 회수하는 게 과연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이었을까?
잃어버린 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지금처럼 2만불 시대에도 카라비너를 두고 내려오면 마음이 아픈데...
그런 생각이 들던 차에 고개들어 내원암장을 보니....
저만치 (릿지로 올라가도 될만한 거리에) 이상한 색깔의 슬링이 눈에 띄었다
보통 슬링이라면 단색이어야 하는데, 그 것은 푸른색과 진한 오렌지색으로 되어 있었다.

눈이 오고 해질무렵이라서 뚜렷이 안나왔네요..
직감적으로 퀵드로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메이커까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들 아시는..콩 사...비너 |  오른쪽 진한 남색 슬링임. |
좀전의 비판적인 사유^^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올라가서 회수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릿지로 올라갈만한 곳이라 생각되었지만, 그런데 신발이 워킹화라서 주춤하였다.
평소에 나는 카라비너를 주어본적이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에 숨은벽 릿지하다가 하강하면서 처음으로 퀵드로를 발견한적이 있다. 나무에 걸려 있었기에 찾을수가 없었으리라.
그 퀵드로를 반반 나누어서 숨은벽 릿지를 우회하는 결단을^^ 해준 친구들에게 선물로 준적이 있었네.)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퀵드로를 남겨놓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도 예전에 이길을 선두로 하강해본적이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진에 있는 크랙길(두번째 피치)을 오른다음 60미터 두동으로 하강을 하였으리라.
그런데 바닥에서 한 이삼미터 좀 부족함을 알아차리고,
릿지로 내려올까, 볼트에 슬링을 걸고 내려올까
그래도 안전을 위해 퀵드로를 저만치 볼트에서 걸었으리라.
그런다음 두번을 나누어서 하강을 하였겠지.
그들은 그렇게 하강을 하고 퀵드로를 남겨놓았다.
(*혹 퀵드로가 아니라 기존에 있는 슬링에 카라비너 하나만 남겨놓았을 수도 있겠네...)
등반은 상당히 심리적인 게임이다.
그날 기분따라 슬랩이 발딱 서있어 보이기도 하고,
바짝 누워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런 미묘함이 있다.
그래서 만약 등반중에 카라비너를 하나 주었다고 치자.
그 얼마나 기분이 업될까나.
동료들과 노획물을 앞두고 즐거움을 나누는 그는 쉽게 올라간다.
추락할 지도 모르는 곳을 가벼얍게 올라서....완료를 외친다.
하강할 때 퀵드로를 남기고 간 그사람은 복을 지은 셈이다.
다음 클라이머가 추락과 부상의 위험을 넘어서도록...
복받을지어다.
이런 생각이 즐거워 다음날 다시올까 하다가, 아서라 그만 두기로 했다.~~
탈출(비상하강)할 때,
막슬링을 볼트에 넣어 자일을 통과시키지 말고,
카라비너나 링을 씁시다.
한결 부담없이 하강할 수 있고,
다음 클라이머에게 복을 짓는 일입니다.
참조 :
ㅁ 마운틴 지에서 등반장비에 관한 기사중 신승모씨 이야기
http://blog.daum.net/2745m/8268463?nil_profile=blog
ㅁ 서울산업대 신문에서 신승모 동정
http://times.snut.ac.kr/?news/ ··· e%3D1
ㅁ 마운틴 지에서 신승모 동정 기사
http://www.himalayaz.co.kr/new ··· 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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